신라 진흥왕대의 한강유역 진출 배경
The background of advance into the Han River basin of King Jinheung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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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 진흥왕은 남조의 양과 교류를 통하여 발달한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왕권과 지배체제의 강화를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전략적인 거점으로써 한강유역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양의 사신이 신라로 파견되었던 것이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양 무제는 전륜성왕신앙을 신봉하였는데, 특히 불사리신앙은 전륜성왕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양 무제의 전륜성왕 신앙은 진흥왕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진흥왕은 불사리를 봉양하면서 전륜성왕을 표방하였다. 548년 신라는 군사를 파견하여 백제의 독산성을 구원하였다. 548년은 진흥왕이 15세가 되던 해이다. 아마도 진흥왕은 548년 정월에 15세가 되면서 모후의 섭정으로부터 벗어나 친정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549년 양의 사신이 신라에 파견되었던 것을 계기로 백제와의 관계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550년 신라는 고구려의 도살성과 백제의 금현성을 모두 차지하면서 한강유역으로의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551년 진흥왕은 개국으로 연호를 개원하였다. 이것은 한강유역으로의 진출과 관련된 것으로, 진흥왕의 정치적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이후 진흥왕은 낭성으로 순수를 하면서 예악사상이 반영된 우륵의 음악으로 새롭게 장악한 변경지역을 통합시키고, 유교적인 왕도정치에 활용하여 왕권강화를 추구하였다. 지금까지 한강유역으로의 진출은 백제 성왕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오히려 신라 진흥왕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일 정도로 관련 기록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한강유역으로의 진출은 실질적으로 신라 진흥왕의 의도에 따라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King Jinheung(진흥왕) accepted advanced culture through exchanges with country Liang(양) and attempted to strengthen the kingship and ruling system based on it. herefore, he recognized the fact that it was necessary to secure the Han River basin(한강유역) exchange with country, Liang and this became an important background for the advance of the Han River basin. Liang Dynasty Emperor Wu(양 무제) believed in the faith of Cakravartirajan (전륜성왕). particular, Buddhist Relic Worship(불사리) was closely related to Cakravartirajan, and had a great influence on King Jinheung. King Jinheung claimed to be the Cakravartirajan by enshrining Buddhist Relic Worship, and later, as he built a the sixteen-foot Buddha statue(장육존상) at Hwangryongsa Temple(황룡사), the faith of Cakravartirajan was further expanded. After an envoy was dispatched to Silla in 594, the relationship with Baekje changed. Silla saved them when Goguryeo attacked Doksanseong(독산성) of Baekje in 548, but in 550, when Goguryeo and Baekje fought over Dosalseong (도살성) and eumhyunseong(금현성), it occupied both castles. Thereby, Silla laid a foundation for advancing into the Han River basin. In 551, King Jinheung made a Era Name(연호) by Foundation of the Country(개국). This was related to the advance of the Han River basin, and the will of King Jinheung was strongly reflected. After that, he royal patrol(순수) to Nangseong(낭성) and called Uruk(우륵) and enshrined at Gukwon(국원). So far, it has been understood that the advance of the Han River basin was led by Sacred King Seong(성왕) of Baekje, but there are many differences in the related records to the extent that it appears to have been made by King Jinheung of Silla. Therefore, it has been strongly held that the advance of the Han River basin was actually made independently according to the intention of King Jinheung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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