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점령과 巡狩
Occupation of the Han River area and the royal patrol of Silla King Jinh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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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551년 신라 진흥왕은 백제, 가야군과 더불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상류의 10군을 차지한 후 나아가 백제가 점령한 한강 하류 지역까지도 차지하였다. 이후 554년 백제와 신라 사이에 관산성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신라는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죽이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사람은 신주 군주 김무력과 비장 도고였다. 그리고 신라의 조직적인 첩보 활동더 이 승리에 이 큰 기여를 하였다. 신주를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한강유역 경영에 들어간 진흥왕은 555년에 신주로 순행하였다. 이 순행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고구려와의 국경선을 확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에 공을 세운 신주 주민들에게 포상을 내리는 것이었다. 진흥왕의 신주 순행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 북한산비이다. 이 비에 사용된 돌은 경주에서 가지고 왔다. 북한산 지역의 돌이 아닌 경주 지역의 돌을 사용한 것은 새로 점령한 한강 유역 일대가 이제 신라의 영토가 되었음을 확고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비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비봉에 세워졌다. 높은 비봉에 이 비를 세운 것은 하늘에 드리는 제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Abstract
In 551, Silla King Jinheung attacked Goguryeo with allied forces of Baekje and Gaya, and occupied 10 Gun(郡) on the upper areas of Han River. After then Silla occupied the downstream areas of the river, originally taken by Baekje. In the battle at Gwansan castle between Baekje and Silla in 554, Silla gained a great victory by capturing and executing King Seong of Baekje. Gunju (minister) Kim, Mu-Ryuk of Sinju and Bijang (executive assistant) Dodo(都刀) led the winning of the battle, and also systematic intelligence activities of Silla greatly contributed to the victory. By establishing Sinju, a local government, King Jinheung started full management of the area of the Han River and went on patrol to Sinju in 555. Two purposes of the patrol were to settle the national boundaries between Silla and Goguryeo, and to award residents in Sinju who contributed to the victory. Bukhansan monument was raised to commemorate King Jinheung's patrol to Sinju. The monument is made of a stone from Gyeongju, the capital of Silla, not from Bukhansan area. It is to proclaim that Han river area became Silla's territory. Moreover, it is set up on the Bibong, a high-peak hard to access. This presents a ritual aspect of the monument to the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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