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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仁老의 詩文學에 나타난 현실참여의 갈망과 文學性

A Study about Participation consciousness and Literariness on the Poems of Yi, In-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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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이인로는 고려 전기 명문 문벌가로 알려진 仁州 李氏 집안 출신이었다. 하지만 어려서 부모를 모두 여의고 그의 숙부였던 화엄종의 僧統 寥一 스님에게 거두어져 양육을 받는 등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겪었다. 그는 무신집정기의 혼란을 겪었으나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를 해 宦路에 나아가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입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장원급제는 그에게 문학적 역량에 대한 명성을 주었을 뿐, 곧 바로 실질적인 관직에의 현달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이인로는 아주 오랫동안 下品의 말직에 머물러 있었고, 高宗朝에 들어 67세의 나이에 가까스로 그의 마지막 벼슬인 左諫議大夫에 보임되었다. 그의 문학적 역량과 관료로서의 연륜에 비추어 보아, 60대의 노년에 들어서야 겨우 4품직의 벼슬을 받았던 것은 고려 전기의 문벌 출신을 배제한 무신집권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인로가 평생토록 그의 능력에 상응하는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기에 그는 오히려 그의 문학적 역량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나타내 보였다. 그가 宦路에서는 크게 현달하지 못하고 늘 미관말직에 머물러야 했으나, 문학적 역량에 있어서는 당대 제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를 가졌다. 이인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은 최고의 수준이지만 功名은 이와 함께 따르지 않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비록 재상의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어도 이것이 자신의 무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겼다. 오히려 평생 높은 爵祿을 받지 못한 원인이 바로 그가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가졌기 때문이라 위안을 했다. 이인로가 그의 문학론을 개진한 『破閑集』에서 용사에 대해 언급을 한 기사는 換骨奪胎論 등을 포함해 아무리 폭넓게 해석해도 대여섯 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가 용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급한 기사에서 용사를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그는 작품에 용사가 지나치게 과다한 것을 點鬼簿라 했고 더 나아가 李商隱의 西崑體는 용사가 지나치게 險僻하니 문장의 병폐라고까지 단언했다. 기본적으로 이인로는 과도한 용사가 지닌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가 문학 수련의 전범으로 삼았던 蘇軾과 黃庭堅의 경우를 예로 들어, 그들이 李商隱을 본받았어도 造語가 더욱 工巧롭게 되어 용사를 한 흔적이 없는 精妙한 無斧鑿之痕의 경지였다고 칭송한 것이 바로 그의 용사론의 실제였다. 결국 이인로는 단순한 용사 사용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라, 용사의 수준 높은 구사 방법을 강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고려조 중기의 문단이 宋風의 강한 영향을 받아 문학의 한 기교로써 용사의 구사에 관심이 지대했는데, 이에 이인로는 자신의 문학론으로 용사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즉 이인로의 용사론은 적극적인 용사 활용의 주장이 아니라, 적절한 용사의 사용과 그것의 자연스럽고 精妙한 문학성의 구현이었던 것이다. 이인로의 시문학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지적해 볼 수 있는 문학성은 淸新과 富麗의 풍격이다. 그의 시문학에 나타나는 풍격의 모습은 다양하게 파악되지만 淸新과 富麗는 이인로가 스스로 추구하고자 한 높은 경지의 문학성으로 이해된다. 徐居正은 이인로의 시문학에 대해 그 전체적 풍격을 淸新富麗라 평가를 하고 특히 묘사의 공교로움을 부각시켜 놓았다. 이러한 평가는 徐居正에서만 그치지 않고 洪萬宗, 許筠, 任璟 등의 경우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시문학의 주된 비평적 준거를 唐風에 두고 있어 이인로의 시문학에서도 그러한 면모를 더 강하게 지목했다고 할 수 있다. 이인로 시대의 문단은 宋風적 경향이 주된 흐름이었고 그의 작품도 대개 宋風에 기울었지만, 정작 그의 시문학을 평가한 사람들은 淸新富麗의 唐風적 문학성을 이루어낸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들고 이것을 더욱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崔滋는 淸新과 함께 이인로 시문학의 풍격으로 華艶을 말하였다. 華艶의 풍격은 작품의 辭語와 意境이 화려하면서도 매우 아름답게 드러난 것을 가리키는데 富麗의 풍격과 매우 근접한 문학성이다. 이인로의 시문학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었던 풍격은 바로 淸新과 富麗의 문학성이라 하겠다.

Abstract

Yi In-ro(李仁老) was a man of the famous family during Koryo dynasty. He suffered the disorder of military government, he succeed in the exam for a bureaucrat as the top seat, and he wanted to make 'Participation consciousness' on political society. But he remained in a low position for along time, actually he didn't realize his dream. Because of that, he showed very strong pride on his literary ability. Yi In-ro(李仁老) displayed his literary theory on the critique book Pahanjib(破閑集). However he didn't write many things about using of historical facts(用事). He knew the problem of using excessive historical facts, and he understood negatively. He was not a supporter of using historical facts, but he was a man of studying the higher level method of using historical facts. He insisted very natural ingenious using of historical facts without traces. The most important literariness on the Yi In-ro(李仁老)'s poems is a character of fresh and splendor(淸新富麗). The literary circles during the middle period of Koryo dynasty showed Song-style(宋風) mainly, so Yi In-ro(李仁老) wrote many works as Song-style(宋風). But many literary critic selected and estimated as his representative works which were made the T'ang-style(唐風) such as literariness of fresh and splendor(淸新富麗) in his total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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