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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官制와 그 계통적 접근

夫余の官制の成立と系統に対する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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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古朝鮮 이래 정치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夫餘를 비롯한 三韓 등지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또한 漢郡縣의 통치체제를 경험하면서 그 조직이나 官名 등은 부여를 비롯한 東濊 및 高句麗 등 삼국 초기에 원용되기도 하였다. 夫餘 초기의 ‘君王’은 삼한 大國의 國邑 主帥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곧 국읍의 주수는 자신의 세력기반을 떠나서 부여의 王京에 거주한 諸加層으로 성립하였고, 그들 가운데 최고 정점에 위치한 존재가 바로 부여의 ‘군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여의 諸加는 그들이 별도로 관할하던 세력기반인 四出道의 크기에 따라 구분되었으며, 고구려의 大加와 小加처럼 分化되어갔다. 한편 邑落의 豪民은 예비 관료군의 성격을 갖는데, 이들은 고구려에서 大加가 自置했던 使者ㆍ皂依ㆍ先人과 연결되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부여 및 고구려의 통치체제는 점차 연맹왕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인 지배체제를 지향해 갔으며, 지방에 대한 통치도 諸加를 통한 간접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점차 직접적인 방식을 모색하면서 통치조직을 정비해 갔다. 고조선의 官名은 朝鮮侯의 稱王 이후부터 확인되며, 고조선 말에는 다양한 관명이 나타난다. 고조선의 관명은 실제 고조선 고유의 통치체계에 바탕을 둔 것인데, 제후적 존재로 보이는 博士 衛滿의 職任은 뒤이어 확인되는 족장적 연원의 ‘相’ 또는 ‘將軍’과 맥이 닿는다. 위만조선은 족적 유대감이 강한 크고 작은 족장세력을 중앙의 지배 신분층으로 편제하며 연맹왕국 체제를 성립시켰다. 곧 고조선의 지배체제는 부여ㆍ고구려의 ‘大加’에 비견되는 족장적 연원의 ‘相’職과 ‘將軍’職을 中心으로 편제되었다. 당시 ‘相’職을 소지한 인물은 적어도 小國 규모의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가진 族長 출신이었으며, 將軍 또한 相과 더불어 재지 기반을 지닌 족장적 속성의 일면을 가졌다. 東濊는 중국 郡縣 및 高句麗 등의 간섭과 견제로 인적ㆍ물적 수탈을 강요당했으며, 동예의 읍락 거수가 소지한 관명을 비롯하여 不耐濊國의 屬吏名도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侯ㆍ邑君ㆍ三老는 동예 거수들의 현실적인 세력 규모와 우열에 따라 차등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東部都尉가 관할한 領東7縣은 이 지역에 삼한 小國에 비견되는 정치체가 7개 이상 있었음을 알려주며, 그 가운데 治所였던 不耐縣은 유력한 세력이었다. 실제로 不耐濊侯는 功曹ㆍ主簿 등의 속리를 거느리면서 侯國의 면모를 보여 동예사회의 정치적 성장을 알려준다. 漢郡縣 관할 하의 영동7현에 갖추어졌던 屬吏制는 東部都尉가 폐지되면서 대부분 무너졌지만, 불내예국은 정치적 통합의 진전으로 필요했던 독자적인 官制를 과거 屬吏制의 틀을 활용하여 運用했다. 특히 不耐侯는 다시 不耐濊王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불내예국은 동예 지역의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상정되며, 不耐侯와 屬吏의 속성은 각각 부여 및 고구려의 大加와 그들이 거느렸던 사자ㆍ조의ㆍ선인에 그 맥이 닿는다. 부여의 ‘加’官와 ‘使者’官의 성립연원은 각각 族長的 속성과 使役的 속성으로 구분된다. ‘大使’의 경우 기본적으로 ‘使者’官에 속하지만, 연맹왕국의 성장과 함께 夫餘王 직속의 내외 행정실무를 관장하였던 최고관직이며 전통적인 ‘使者’官의 신분적 한계를 넘어서 ‘加’官 계통의 인물이 보임되기도 하였다. 『삼국지』 고구려전의 관명은 나름의 서열에 의하여 제시되었는데, 고구려왕은 官等 사여 및 승급을 통하여, 편입된 那國 또는 那部에 대한 결속력을 도모하고 聯盟王의 지배력 관철을 강화하였다. 고구려 초기의 관명으로 相加ㆍ古雛加ㆍ對盧ㆍ沛者ㆍ優台 등은 족장적 속성을 지닌 夫餘의 ‘加’官에, 그리고 使役的 속성의 主簿ㆍ(丞)ㆍ使者ㆍ皂衣ㆍ先人은 夫餘의 ‘使者’官에 서로 연결된다. 특히 主簿ㆍ使者 등은 小國 및 大國 단계에 설치되었던 官名으로, 그 뒤 對盧ㆍ沛者ㆍ優台는 小國이나 大國의 수장을 중앙에 편제하는 방식으로 설치하여 고구려 초기의 官制를 성립시켰던 것으로 이해된다.

Abstract

古朝鮮からの政治社会の歴史的経験は夫余を含めた三韓等地に直間接的に影響を与えた。また漢郡県の統治体制を経験しながら, その組織や官名等は, 夫余を含めて東濊及び高句麗など三国の初期に援用になったりした。 夫余の初期の君王の擡頭は, 三韓大国の国邑の主帥が政治的に成長することに捜すことができる。すなわち国邑の主帥は自分の勢力基盤を去って夫余の王京に居住した諸加層で成立したし, 彼らの中最高頂点に位置し存在がすぐ夫余の‘君王’と言える。夫余の諸加は, 彼らが別途で管轄していた勢力基盤である四出道の規模によって区分になって, 高句麗の大加と小加のように分化になって行った。一方, 邑落の豪民は, 予備官僚群の性格を持つのに, これらは高句麗で大加が自置した使者․皂衣․先人と連結になる存在だ。そして夫余及び高句麗の統治体制は, 次第に連盟王を頂点にする一元的支配体制を指向して行ったし, 地方に対する統治も, 諸加を通じる間接的統制方式から脱して次第に直接的方式を摸索しながら統治組織を整備して行った。 古朝鮮の官名は, 朝鮮侯の称王以後に初めて記録に確認できて, 末期には先に進んだ時期より多様して官名を見せる。古朝鮮の官名は実際で古朝鮮固有の統治体系に土台を置いたことだが, 諸侯的存在で見える博士衛満の職任は, 引き継いで確認できる族長的淵源の‘相’または‘将軍’等の官名と脈を一緒にする。衛満朝鮮は, 族的紐帯感が強い単位政治体の大ㆍ小族長勢力を中央の支配身分層で編制しながる, 連盟王国体制を成立させた。すなわち古朝鮮の支配体制は, 夫余ㆍ高句麗の‘大加’に比肩になる存在である族長的 淵源の‘相’職と‘将軍’職を中心に編制になった。当時‘相’という官名を所持して人物は, 少なくとも邑落や小国の規模の独自的勢力基盤を持った族長出身であり, 将軍も相とともに在地基盤を持った族長的属性の一面を持った。 東濊は, 中国の郡県及び高句麗等の周辺強大国の干渉と牽制で人的ㆍ物的収奪を強要されただけでなく, 東濊の邑落渠帥の官名を含めて不耐濊国の属吏名も直間接的に影響を受けた。東濊の邑落の渠帥らが区分所持した侯ㆍ邑君ㆍ三老等の官爵は彼らの現実的勢力規模と優劣によって差等反影されたことで理解される。また東部都尉が管轄した領東7県の存在は, 東濊地域で三韓の小国に比肩される政治体が7個以上あったことを知らせてくれて, その中で治所だった不耐県は有力した勢力だった。実際で不耐濊侯は, 功曹ㆍ主簿等の属吏を従えながら侯国の面貌を見せて, 東濊社会の政治的成長を知らせてくれる。漢郡県の管轄下の領東7県に揃った属吏制は, 東部都尉が廃止されながら大部分崩れたが, 不耐濊国は政治的統合の進展で必要した独自的官制を過去で属吏制の型を活用して運用した。 特に不耐侯は再び不耐濊王で任命になって, 不耐濊国は東濊地域の有力した政治勢力で想定になるから, 不耐侯と属吏の属性は, それぞれ夫余及び高句麗の大加と彼らが従えた使者ㆍ皂衣ㆍ先人にその脈が触れる。 夫余の‘加’官と‘使者’官の成立淵源は, それぞれ族長的属性と使役的属性で区分することができる。‘大使’の場合, 基本的に‘使者’官に属したし連盟王国の成長と一緒に夫余王の直属の内外行政実務を管掌していた最高官職で, 伝統的‘使者’官の身分的限界を越して‘加’官系統の人物が補任になったりした。『三国志』 高句麗伝の官名は, それなりの序列に矣して提示になった‘官等’だった。高句麗王は官等賜与及び陞級を通して, 那国または那部に対した結束力を図謀して, 連盟王の支配力の貫徹を強化した。高句麗の初期の官名で相加ㆍ古雛加ㆍ對盧ㆍ沛者ㆍ優台は, 族長的属性を持った夫余の‘加’官に, そして使役的属性の主簿(丞)ㆍ使者ㆍ皂衣ㆍ先人は, 夫余の‘使者’官とお互いに連結される。特に主簿ㆍ使者等は, 小国及び大國の段階に設置になった官名で, その後に対盧ㆍ沛者ㆍ優台は, 小国や大国の首長を中央に編制する方式で設置して高句麗の初期の官制を成立させたことで 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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