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한직의 설치와 그 변화
新羅文翰職の設置とその変化
0
조회
0
다운로드
9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구축된 ‘한국사상 관인ㆍ관직DB’를 활용하여 신라하대 문한직의 변화 과정을 추적ㆍ정리하고, 문한관의 활동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신라는 삼국통일전쟁 전후 시기에 문한관을 두었다. 이 때 문한관인 상문사는 외교문서 작성이나 외교사행 파견은 물론 문한관 양성을 위한 교육도 담당하였다. 상문사의 직임은 그 뒤 통문박사, 한림대로 각각 개칭되면서 계속 이어졌다. 혜공왕대 이후 한림대의 직제는 더욱 다양해졌다. 특히 경문왕 말년 이후 헌강왕대까지 근시기구에 소속된 관인은 문한관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였다. 그들은 국왕의 명령을 받아 여러 비명과 기문을 작성하는 한편으로 국왕의 경연을 담당하면서 국왕의 교서를 작성하였고, 중앙관부와 지방관서의 요직을 맡았다. 문한직은 외교문서와 외교사절의 고유 업무 이외에 국왕의 측근 관료로 기능하였다. 885년 이후에 한림대를 개편한 서서원이 다시 문한관의 역할을 회복하여 비명과 기문 찬술을 전담해 나갔다. 서서원의 관인은 근시직으로 국왕의 측근 관료로 활동하면서 문한직과 함께 중앙관서와 지방관서의 실무직을 맡아 정치적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이러한 모습은 정강왕대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헌강왕은 선왕인 경문왕처럼 측근 관료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경문왕은 왕손과 함께 근시직 문한관을 중앙관서의 차관직이나 지방관서의 장으로 임명하여 측근정치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헌강왕 말년에 이들이 대개 사망하자, 헌강왕은 보다 축소된 세력을 중심으로 왕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서원 중심으로 문한직을 개편하고, 문한관에게 중앙관서의 차관직이나 지방관의 장을 겸직시켜 왕권을 강화하였다. 이 때 김원, 최치원, 박인범 등의 유학지식인은 국왕의 측근관료로 활동하면서 육두품 출신의 신분적 기득권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Abstract
この文は既存の研究成果を土台で, 現在まで構築された‘韓国史上官人官職DB'を活用して新羅するよ文翰職の設置と変化過程を追跡整理して, 文翰官の活動と性格を具体的によく見たのだ. 新羅は三国統一戦争前後時期に文翰官を置いた. この時文翰官である詳文司(師)は外交文書作成や外交使行派遣はもちろん文翰官養成のための教育も担当した. 詳文司(師)の職なのはその後通文博士, 翰林どおりそれぞれ改称されながらずっとつながった 恵恭王代以後翰林台の職制はもっと多様になった. 特に景文王末年以後憲康王代まで近侍機構に属した官人は文翰官の任務を同時に遂行した. 彼らは国王の命令を受けて多くの碑銘と記文を作成する一方で国王の經筵を担当しながら国王の教書を作成したし, 中央官府と地方官署の要職を引き受けた. 文翰職は外交文書と外交使節の固有業務以外に国王の側近官僚で機能こんにちはだった. 885年以後に翰林台を改編した瑞書院がまた文翰官の役活を回復して碑銘と記文の撰述を専担して行った. 瑞書院の官人は近眼職で国王の側近官僚に活動しながら文翰職とともに中央官署と地方官署の実務職を引き受けて政治的主導権を取って行った. このような姿は定康王代以後新羅が滅亡するまでそのまま維持された. 憲康王は先王である景文王のように側近官僚を通じて王権を強化しようとした. 景文王は王孫とともに近侍職文翰官を中央官署の次官職や地方官署の長で任命して側近政治を追い求めた. しかし憲康王末年にこれらがたいてい死亡すると, 憲康王はより縮まった勢力を中心に王権を維持するしかなかった. 彼は瑞書院中心に文翰職を改編して, 文翰官に中央官署の次官職や地方官の長を兼職させて王権を強化した. この時金薳, 崔致遠, 朴仁範などの儒学知識人は国王の側近官僚で活動しながら六頭品出身の身分的既得権を強化しようと思った.
참고문헌 (21)
- 日中民族科學硏究所, "中國歷代職官辭典" (1980), 國書刊行會
- "中國歷代職官詞典" (1992), 上海辭書出版社
- 李基白, "新羅政治社會史硏究" (1974), 一潮閣
- 李基東,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1984), 一潮閣
- 申瀅植, "韓國古代史의 新硏究" (1984), 一潮閣
- 李仁哲, "新羅政治制度史硏究" (1993), 一志社
- 李基白, "韓國古代政治社會史硏究" (1996), 一潮閣
- 全基雄, "羅末麗初 政治社會와 文人知識層" (1996), 혜안
- 곽승훈, "통일신라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 (2002), 國學資料院
- 濱田耕策, "新羅國史の硏究―東アジア史の視点から" (2002), 吉川弘文館
- 李福長, "唐代學士与文人政治" (2005), 齊魯書社
-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 (2006), 혜안
- 三池賢一, "新羅內廷官制考 上ㆍ下", 朝鮮學報, 62 (1972)
- 丁元卿, "新羅景文王代의 願塔建立", 釜山直轄市立博物館年報, 5 (1982)
- 李文基, "新羅時代의 兼職制", 大丘史學, 26 (1984)
- 金昌謙, "新羅景文王代 「修造役事」의 政治史的 考察―王權强化策과 관련하여" (1988), 溪村閔丙河敎授 停年紀念 史學論叢
- 李文基, "新羅의 文翰機構와 文翰官", 歷史敎育論集, 21 (1996)
- 張日圭, "崔致遠 撰 <浮石尊者傳>의 復元 試論", 北岳史論, 6 (1999)
- 張日圭, "崔致遠의 華嚴僧傳 찬술과 海印寺의 화엄사상", 新羅史學報, (창간) (2004)
- 장일규, "최치원의 유교적 정치이념과 사회개혁안", 한국고대사연구, (38), pp.243~280 (2005), 한국고대사학회
- 장일규, "숭복사비명과 경문왕계 왕실", 역사학보, (192), pp.35~65 (2006), 역사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