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植民地 朝鮮人 資本家의 表象과 民族談論 -1930年代 雜誌 <三千里>를 中心으로-

Symbol of Chosun’s Colonial Capitalist and Discourse of Nation -With 1930's magazine Samcheonli as th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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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이 논문에서는 雜誌 <三千里>를 대상으로 植民地 資本家의 表象과 民族談論이 나타나는 방식을 분석했다. 첫째, <三千里>에는 ‘立身出世’라는 전근대적 덕목을 대신하는 근대적 덕목인 ‘自手成家’를 중심으로 하는 談論이 전면화되었다. 둘째, 近代的 資本家 談論에 民族資本家의 談論이 결합되었다. 이 결합이 가장 긍정적인 담론이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셋째, 위의 두 가지가 核心談論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資本-民族 談論은 獨立國家와 같은 巨大談論보다 구체적이며, 식민지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출구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三千里>는 그 대중적 욕망을 民族과 결합시켰던 것이다. 결국 이는 <三千里>라는 잡지를 출판ㆍ유통될 수 있었던 자체 논리이자, 대중매체가 당대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당대 역사ㆍ정치적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at a new situation of colonial capitalist and discourse of nation forming in Samcheonli. First, the narration of capitalized individuals had begun since then. As a result, a self-made man, the virtue of modernity, replaced a man endowed with power and capital in premodern concept. Second, there was the particular situation of the colony Chosun which was expressed by the discours of modernized capitalist. This, however, did not reflect the real situation, but the logic of discourses, because capital was based on the Japan's imperialism. Third, the reason the first and the second could be the main discourses in Japan's colony invasion was that the discourses of the money provided people with the concrete dream and with the possible exit from Japanese oppression. People desired to be rich because they thought that they could be free from Japan's colony invasion. On the other hand, Samcheonli ceaselessly united capital to nation and expressed the universality of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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