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왕대 ‘平壤東黃城’의 위치와移居 기록의 성격
The Location of ‘Pyeongyang Donghwang Fortress’ during the Reign of King Gogugwon and Character of the Records of Migration to the Fortress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427년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이후 평양 지역은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왕도로 기능하였다. 그런데 천도 이전부터 이미 고구려왕이 평양 지역을 국정 중심지로 삼았음을 시사하는 기록이 있어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삼국사기』 고국원왕 13년조(343)에 따르면 고국원왕이 “平壤東黃城으로 移居하였다”고 한다. 이에 적지 않은 학자들이 고국원왕이 이거하였다고 하는 ‘평양동황성’의 위치를 규명하고자 연구를 진행하였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평양동황성’이 “지금의 서경 동쪽 목멱산 중에 있다”는 설명이 부가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던 고려 시대에 덧붙여진 정보로서, ‘평양동황성’의 위치를 추정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다. 조선 시대 제작된 지리서와 고지도들에는 실제로 평양의 동쪽에 위치한 의암동 일대에 목멱산이라는 지명과 ‘황성’이라는 유적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일제시기에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의암동 일대에는 실제로 토성 유적이 존재하였다. 최근 새로 발굴된 자료인 『朝鮮城址實測圖』에는 의암동 토성의 실측 도면이 실려 있어 그 규모와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의암동 토성 유적이야말로 ‘평양동황성’, 즉 ‘평양 동쪽에 있는 황성’의 실체라고 판단된다. 다만 이 성은 규모가 매우 작고 입지상으로도 왕성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낙랑군이 존속하던 시절 하부 행정 단위의 시설이거나 대동강의 渡江 위치에 설치된 거점 방어 시설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고국원왕이 이곳으로 이거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과연 고구려 당대의 것이 맞는지도 그 사실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삼국사기』 편찬 당시 여러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의암동 토성과 관련해 평양 현지에서 떠돌던 부정확한 전승이 채록되어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Abstract
King Jangsu of Goguryeo transferred the capital to Pyeongyang in 427. Later, the Pyeongyang area acted as the king’s city until Goguryeo collapsed. But there is a record that suggests that kings of Goguryeo took this place as the center of state affairs even before the reign of King Jangsu, staying in the Pyeongyang area, which drew researchers’ attention. It is the record in Year 13 of the reign of King Gogugwon in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Samguk Sagi). According to the record, King Gogugwon “migrated to Pyeongyang Donghwang Fortress” in 343. Thus, many researchers have investigated and researched the location of ‘Pyeongyang Donghwang Fortress’ to which King Gogugwon migrated. And yet, in the record of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there is a description that ‘Pyeongyang Donghwang Fortress’ is “in Mt. Mongmyeok-san, east of Seogyeong of today.” This is the information added during the Goryeo Dynasty period when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were compiled, which is an important clue for the estimation of the location of ‘Pyeongyang Donghwang Fortress.’ In Geographic books and old maps produced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it can be found that there was a place name of Mt. Mongmyeok-san, and there was a relic named ‘Hwang-seong’ in the area of Euiam-dong located east of Pyeongyang. In the area of Euiam-dong, there was a relic of a fortress, which was verified in a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Especially, in the newly excavated material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Joseon Seongji Silcheukdo, there are the surveyed drawings of Euiam-dong Fortress, which help understand its size and shape. From various situations, the relic of Euiam-dong Fortress is judged to be the substance of ‘Pyeongyang Donghwang Fortress’, that is, ‘Hwang-seong located east of Pyeongyang.’ And yet, this fortress is very small, and it is hard to accept it as a king’s fortress. It is reasonable to understand it as a facility of the subordinate administrative unit when there was Nangnang-gun or a facility for strongpoint defense installed in the place for crossing the Daedong-gang River. It is difficult to trust the record that King Gogugwon moved here is that of the Goguryeo period. It is judged to be reasonable to understand it as a record inaccurately passed down related to the relic of Euiam-dong Fortress inserted in the process of collecting various materials during the Goryeo Dynasty period when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were compiled.
참고문헌 (48)
- "三國史記", ~
- "高麗史", ~
- "世宗實錄地理志", ~
- "新增東國輿地勝覽", ~
- "東輿圖", ~
- "靑邱要覽", ~
- "海東地圖", ~
- "輿地圖", ~
- "朝鮮城址實測圖",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 "平壤附近樂浪郡及高句麗遺蹟圖, In 朝鮮古蹟圖譜 1, 地圖 1", 朝鮮總督府, ~ (1915)
- 平壤附近高句麗遺蹟圖, , 朝鮮總督府, ~, pp.古蹟調査特別報告 第5冊(高句麗時代遺蹟 圖版 上冊) (1929)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한중일 중세도성 한국편" (2018)
- 손영종, "고구려사의 제문제" (2000), 신서원
- 전제헌, "고구려력사연구-안학궁유적과 일본에 있는 고구려관계 유적, 유물" (1998), 백산자료원
- 朝鮮總督府,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 (1942)
- 채희국, "대성산 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관한 연구" (1964), 사회과학원출판사
- 孔錫龜, "高句麗의 領域擴張에 대한 硏究-四世紀를 中心으로-", 韓國上古史學報, 6 (1991)
- 권순홍, "고구려 ‘평양’의 변천과 전기 평양성의 위치에 관한 쟁점 검토", 역사문화연구, (70), pp.3~38 (2019), 역사문화연구소[DOI]
- 기경량, "평양 지역 고구려 왕릉의 위치와 피장자", 한국고대사연구, (88), pp.5~46 (2017), 한국고대사학회[DOI]
- 김미경, "고구려의 낙랑·대방지역 진출과 그 지배형태", 學林, 17 (1996), 延世大學校 史學硏究會
- 金元龍, "韓國文化의 起源" (1976), 探求堂
- 김지희, "高句麗 故國原王의 平壤 移居와 南進", 석사, 국사학과, pp.2016
- 김지희, "高句麗 故國原王의 平壤 移居와 南進", 韓國史論, 62 (2016)
- 閔德植, "龍巖 車文燮敎授 華甲紀念 史學論叢" (1989), 신서원
- 徐永大, "高句麗 平壤遷都의 動機-王權 및 中央集權的 支配體制의 强化과정과 관련하여-", 韓國文化, 2 (1981)
- 申東河, "高句麗의 寺院 造成과 그 意味", 韓國史論, 19 (1988)
- 안정준, "高句麗의 樂浪・帶方 故地 영역화 과정과 지배방식", 한국고대사연구, (69), pp.125~169 (2013), 한국고대사학회
- 양시은, "고구려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고구려발해연구, 50, pp.37~66 (2014), 고구려발해학회
- 여호규, "4세기 高句麗의 樂浪․帶方 경영과 中國系 亡命人의 정체성 인식", 한국고대사연구, (53), pp.159~200 (2009), 한국고대사학회
- 여호규, "삼국시대 고고학개론." (2014), 진인진
- 이도학, "『三國史記』의 高句麗 王城 記事 檢證", 한국고대사연구, (79), pp.135~172 (2015), 한국고대사학회
-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1976), 博英社
- 林起煥, "4세기 고구려의 樂浪·帶方地域 경영:안악3호분·덕흥리고분의 墨書銘 검토를 중심으로", 歷史學報, 147 (1995)
- 임기환, "고구려 평양 도성의 정치적 성격", 한국사연구, (137), pp.1~32 (2007), 한국사연구회
- 임기환, "고구려 전기 都城 관련 기사의 재검토 - 기사의 原典 계통을 중심으로-", 역사문화연구, (65), pp.3~36 (2018), 역사문화연구소[DOI]
- 張福有, "고구려 역사문제 연구 논문집" (2005), 고구려연구재단
- 張傚晶, "龜泉元裕漢敎授定年紀念論叢 上" (2000), 혜안
- 장효정, "『三國史記 』 高句麗本紀 東川王 21年條 記事 檢討- 平壤城의 位置 比定을 중심으로 -", 고구려발해연구, 13, pp.1~ (2002), 고구려발해학회
- 정찬영, "평양성에 대하여", 고고민속, 1966(2) (1966)
- 車勇杰, "高句麗 前期의 都城", 國史館論叢, 48 (1993)
- 채희국, "평양 부근에 있는 고구려 시기의 유적-고구려 평양 천도 1530주년에 제하여-", 문화유산, 1957(5) (1957)
- 채희국, "평양성(장안성)의 축성 과정에 대하여", 고고민속, 1965(3) (1965)
- 關野貞, "朝鮮の建築と藝術" (1941), 岩波書店
- 三品彰英, "高句麗王都考-三国史記高句麗本紀の批判を中心として", 朝鮮學報, 1 (1951)
- 田中俊明, "高句麗の平壌遷都", 朝鮮學報, 190 (2004)
- 池內宏, "滿鮮史硏究 上世 1卷" (1960)
- 魏存成, "高句麗初, 中期的都城", 北方文物, 1985(2) (1985)
- "북한지역정보넷"[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