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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延邊지역 全羅北道 사람들의 강제이주와 정착

Forced Migration and Settlement of North Jeolla Province People in China’s Yanbia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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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1932년 제국 일본이 만주국을 건립하면서 한반도에서 한인의 만주 이주 형태도 바뀌게 되었다. 특히 안전농촌 설치 이후에는 집단이주 형태의 이민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1937년 중일전쟁은 그 기점이 되었다. ‘왕도낙토’를 개척하기 위해 이민 또는 이주민의 용어를 ‘개척민’으로 변경하였으며, 전라북도는 개척민의 보급창고였다. 이 글에서는 만주국 시기 전라북도인들이 만주지역에 ‘강제이주’되었으며, 제1세대들의 이주과정과 그 강제성을 규명하였다. 특히 전라북도 이주 1세대의 구술자료를 통해 그들의 이주와 정착 및 생활실태를 규명하였다. 만주국에서는 ‘개척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토성을 쌓았으며, 이주민들은 이곳에서 감옥과도 같은 생활을 영위하였다. 경제공동체의 완성을 통해 전시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던 만주국은 오족협화를 내세워 이주한인들을 통제하였다. 통제와 감시의 선결 조건은 강제성이었다. 강제이주된 전북인들은 해방과 동시에 정착과 귀환의 갈림길에서 고민하였다. 오늘날 연변자치주 안도현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대부분은 만주국의 강제이주 정책의 산물이었다.

Abstract

When Imperial Japan founded Manchuria in 1932, the Korean Peninsula changed the form of Korean migration to Manchuria. In particular, after the establishment of a safe farming village, the government will seek to emigrate in the form of group owners.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was the starting point. To carve out ‘Wangdo Naktto’, the term of immigrants or migrants was changed and Jeollabuk-do was a supply depot for pioneers. In this article, the people of North Jeolla Province were ‘forced to move’ to Manchuria during the Manchukuo period, and they identified the first generation’s migration process and its coercion. In Manchuria, Saturn was built for the safety of the ‘convicted’ people, and migrants lived here like prisons. Manchukuo, which tried to maintain its wartime system through the completion of the economic community, controlled the migrants under the pretext of cooperation between the five ethnic groups. The pre-emptive condition of control and surveillance was enforceability. The people of Jeollabuk-do, who were forced to move, agonized over the crossroads of settlement and return at the same time as liberation. Today, most of the “chaioxianzu(朝鮮族)” residing in Ando County, Yanbian Province, were products of the Manchurian country’s forced migratio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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