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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평양도성의 경관 변화와 그 의미

A Study on the Landscape of Pyongyang, the Capital City of Kogu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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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평양이라는 고구려의 지방도시가 도읍으로 선택되고 오랜 기간 국가의 최고 행정중심지로써 경영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도시경관의 모습과 변화를 427년 평양 천도와 586년 장안성 이도를 기준으로 3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평양지역이 고구려의 주요 지방도시로 기능하던 1기의 경관은 낙랑구역의 재편과 대성구역의 신도시 조성이라는 큰 경관적 변화로 요약된다. 낙랑의 전통에 고구려의 문화 요소가 덧입혀지는 낙랑구역과는 달리 대성구역은 국내도성과 유사한 분위기의 신도시로 개발되었다. 2기는 평양지역이 고구려의 수도로 그 지위가 격상된 시기로, 대성구역이 왕도의 핵심이었다. 당시의 왕성은 대성산성, 궁성은 청암동토성이었다. 1기와는 달리 봉토석실분으로 묘제가 일원화되었는데, 왕릉급 고분은 초대형 기단봉토석실분이었다. 국내도성기와는 달리 도성의 외곽에 산재 분포하고 있는 이들 왕릉은 상징적 경관으로 기능하였다. 사찰은 주민의 결속 외에도 불국토 연출과 함께 왕권의 강화를 위한 것으로, 청암동토성 내에 사찰이 조영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이 밖에도 천도로 인한 인구유입으로 낙랑구역 또한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3기는 중구역에 새로 축조된 장안성이 도성으로 기능하였다. 왕성과 궁성으로 이루어진 평양 2기와는 달리 격자형 도로를 이용하여 도성민의 거주 구역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서도 이를 둘레가 16km에 달하는 거대한 성벽으로 감싸 보호하는 새로운 경관이 형성되었다. 대성구역과 낙랑구역은 인구의 유출로 도시가 축소되었고, 그 결과 낙랑구역은 사냥터로 전락하게 되었다. 왕릉은 전면에 사신이 등장하는 벽화가 그려진 석실분으로, 여전히 도성 외곽에 분포한다. 다만 진파리 고분군과 강서삼묘 등에서 확인되는 삼각형 배치는 가족관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appearance and changes on the archaeological landscape of Pyongyang which was the capital city of Koguryo. The first period of Pyongyang, which served as a major local city of Koguryo, was summarized as a major landscape change of the reorganization of the Nakrang District and the creation of a new city in the Daeseong District. Unlike the Nakrang District, where Koguryo's cultural elements are added to the tradition of Lelang, Daeseong District was developed as a new city with a similar landscape to the Guknae capital city. In the second phase, the Pyongyang was elevated to the capital of Koguryo, and the Daeseong District, where Daesung Mountain Fortress as and Cheongam-Dong Earthen Wall are located as the royal palaces, became the key area. Unlike the first period, the tombs were unified with the stone-chamber tomb, and the royal tombs were the extra-large stone-chamber tomb with stone platform. These royal tombs which were scattered around the outskirts of the capital functioned as symbolic landscapes. The temple was intended to strengthen the solidarity of the residents and the royal authority, and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in Cheongam-Dong Earthen Wall may have been a similar reason. In addition, due to the influx of population from the capital city, the scope of the Nakrang District has also been expanded. In the 3rd period, the newly built Jangan Castle in Jung District functioned as a capital city. A new landscape was formed that effectively controlled the residential area of the capital residents by using a grid-type road and protected it by enclosing it with a 16km-wide stone walls. Daesung and Nakrang District were reduced due to the outflow of population, Consequently, the Nakrang area was reduced to a hunting ground. The royal tombs are stone-chamber tombs with mural painting of four deities, and are still distributed outside the capital. However, the triangular arrangement found in the Jinpari Tombs and Gangseo Tombs seems to be related to the family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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