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호적 호의 가입 원리와 이를 통해 본 호의 모습: 가옥의 소유권 및 임차권과 관련하여
The Membership Principle of Family Register Household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and Their Appearance through This : In Connection with the Ownership and the Rights to Lease of Houses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는 호의 가입이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보유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18, 19세기 단성호적을 사례로 이를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호 가입의 한 사유가 되는 호 분리는 분가 시에 이루어졌으며, 이때 분가는 본가와 분리된 개별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을 보유하는 것이었다. 이는 호 분리의 조건이 본가와 분리된 개별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보유 여부에 있으며, 호 가입이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을 보유하는 경우에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호 가입이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보유 여부에 의해 결정됨에 따라 토지거래 빈도가 잦아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변화가 자주 일어난 1735년에는 호 가입율이 상승하였다. 반대로 토지 거래 빈도가 뜸해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변화가 적게 일어난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호 가입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또 거주이동이 적어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변화가 적은 농촌은 그렇지 않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호 가입율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18세기 중엽 이후 토지 소유가 양반층에 집중되면서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을 보유한 양반층이 증가함에 따라 19세기 들어 양반호의 가입율도 상승하였다. 한편, 19세기의 가중된 경제적 불안정성 속에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분리를 기피하고 결합하고자 하는 경향이 짙어짐에 따라 결합가족 호의 가입이 증가했으며, 가옥 규모가 다양함에 따라 가입호의 경제력도 부실호에서 빈잔호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호 가입에서 보이는 몇 가지 특징적 현상들은 호 가입이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보유 여부에 있다는 결론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호가 가옥의 소유권 내지 임차권 단위로 묶여져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호가 자연가와 일치하거나 편제된 결과물이 아닌 <경국대전> 호구식에서 규정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이런 점에서 호는 자연호나 편제호가 아닌 『경국대전』 호구식에서 규정한 그대로의 호인 법제호라고 하겠다.
Abstract
This paper tried to establish the premise that membership of households is decidedby possession of ownership or the rights to lease of houses and check it throughthe examples of 『Danseong Family Register』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Separation of households which is a reason of membership of households wasdone when they are moved out. At this moment, moving out is to possess theownership or the rights to lease of individual houses which are separated fromhead families. This demonstrates that conditions about separation of householdsare possession of the ownership or the rights to lease about individual houses whichare separated from head families and membership of households was possible whenpeople possessed them. Like this, as membership of households is decided by possession of the ownershipand the rights to lease about houses, the membership rate that the ownership orthe rights to lease about houses were frequently changed in 1735 increased becauseof great frequency of land transaction. On the contrary, the membership rate ofhouseholds kept the low level after the mid-nineteenth century that there was fewchange of the ownership or the rights to lease about houses as the frequency ofland transaction was poor. And the farm villages that there were few changes ofthe ownership or the rights to lease about houses because they did not move well showed the relatively lower membership rate of households than that of the othercities which did not do. As land ownership concentrated on the Yangban classes(ofnoble birth) since the mid-nineteenth century, the membership rate of their housesincreased in the nineteenth century because the ones who possessed the ownershipor the rights to lease about houses did. Meanwhile, as there was the increasedtendency to avoid separation of the ownership or the rights to lease about housesand combine them with each other in the unstable economy increased in the nineteenthcentury, membership of households by combined families increased and their economicpower showed the various features ranging from Busilho to Binjanho as the sizesof houses diversified. Like this, the several characteristic phenomena which are shownin membership of households can be naturally explained through the conclusionthat it depends on possession of the ownership or the rights to lease about houses. And it means that households were classified by unit of the ownership or the rightsto lease about houses because they were based on the census type that 『Gyeonggukdaejeon』 defined, not the results that they accorded with natural householdsor organized ones. In this respect, the households can be the legislated ones thatthe census type of 『Gyeonggukdaejeon』 defined, not the natural or organized ones.
참고문헌 (49)
- "단성호적", ~
- "대구호적", ~
- "備邊司謄錄", ~
- "東元面梧峴里節目成冊(奎古 4256-9)", ~
- "勝聰明錄", ~
- "仁祖實錄", ~
- "新補受敎輯錄", ~
- "受敎輯錄", ~
- "大典通編", ~
- "甲午式戶籍事目", ~
- "戶籍謄關冊", ~
- 慶星大學校 鄕土文化硏究所, "石臺千氏五代六孝古文書", 民族文化 (1995)
- 朴容淑, "朝鮮後期社會史硏究" (1994), 늘함께
- 閔善姬, "朝鮮後期 東萊 地域社會의 엘리트와 天主敎 受容者들 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 (1995), 釜山敎會史硏究所
- 孫淑景, "조선후기 언양의 향반 창녕 성씨 가문과 천주교 수용자들 그리고 이에 관한 고문서" (1999), 부산교회사연구소
- 李榮薰, "朝鮮後期社會經濟史" (1988), 한길사
- 이정수, "조선후기 토지소유계층과 지가변동" (2011), 혜안
- 이정수, "조선시대 노비와 토지 소유방식" (2006), 경북대학교 출판부
- 전성호, "조선후기 米價史 연구" (2007), 한국학술정보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 (199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김건태, "조선후기 호적대장의 인구 기재 양상, In 단성 호적대장 연구" (2003),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김건태, "戶口出入을 통해 본 18세기 戶籍大帳의 編制方式: 丹城戶籍大帳을 중심으로, In 단성호적대장연구" (2003),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김건태, "조선후기 호의 구조와 호정운영, In 단성호적대장연구" (2003),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김건태, "호적대장에 등재된 호구의 성격", 한국사연구, (132), pp.137~178 (2006), 한국사연구회
- 김경란, "조선후기 도시 지역의 姓貫변동 ―大丘府西上面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71), pp.67~94 (2010), 대동문화연구원
- 권기중, "18~19세기 감영소재지의 인구구성과 향리층의 존재양상 ―경상도 대구부 동상면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71), pp.43~66 (2010), 대동문화연구원
- 문숙자, "조선시대 分財文記와 明代의 分家文書-근세 한국과 중국의 재산분할 관행 및 문서 비교-", 古文書硏究, 29, pp.89~136 (2006), 한국고문서학회
- 朴容淑, "18~19세기의 雇工: 慶尙道 彦陽縣 戶籍의 分析", 釜大史學, 7 (1983), 釜山大學校 史學會
- 박주, "18,19세기 東萊府 潁陽千氏 집안의 孝子旌閭 청원 과정 - 『石臺千氏五代六孝古文書』를 중심으로", 사학연구, (85), pp.77~120 (2007), 한국사학회
- 손병규, "조선후기 상속과 가족형태의 변화 ―丹城縣에 거주하는 安東權氏 가계의 호적 및 족보 기록으로부터", 대동문화연구, (61), pp.375~404 (2008), 대동문화연구원
- 손숙경, "조선후기 동래 석대동 하리의 영양 천씨 가문과 이들의 고문서" (2009),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한국학연구소
- 심재우, "조선후기 단성현 법물야면 유학호의 분포와 성격", 역사와 현실, 41 (2001), 한국역사연구회
- 심재우, "조선후기 사회변동과 호적대장 연구의 과제", 역사와 현실, (62), pp.223~246 (2006), 한국역사연구회
- 유창호, "20세기 초 경기도 통진군 ‘보구곶’마을 사람들의 생활 양태 -1901년(光武 5) 通津郡 甫口串面 戶籍자료 분석 사례-", 역사민속학, (40), pp.37~70 (2012), 한국역사민속학회
- 李榮薰, "朝鮮時代의 主戶: 挾戶關係 再論", 古文書硏究, 25 (2004), 韓國古文書學會
- 임학성, "조선후기 경상도 彦陽지역 ‘主-挾’型 家戶의 族的 결합양태", 國史館論叢, 100 (2002), 국사편찬위원회
- 임학성, "18세기 전반 경상도 丹城縣의 자연재해와 인구・신분구성(比)의 변화, In 조선시대의 사회와 모습" (2003), 集文堂
- 임학성,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조선시대 생활사 3)" (2006), 역사비평사
- 양진석, "조선후기 漢城府 中部 長通坊 丁萬石契 소재 가옥의 매매와 그 특징", 규장각, (32), pp.33~61 (200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장경준, "조선후기 東萊府 潁陽千氏 집안의 戶籍資料와 이를 통해 본 그들의 모습, In 五代六孝古文書" (2006), 부산박물관
- 장경준, "18세기 호적상 ‘主戶’의 존재 양태와 戶의 모습에 대한 일고찰 - 1714년 대구 조암방 호적을 중심으로 -", 역사와경계, (67), pp.103~138 (2008), 부산경남사학회
- 장경준, "18~20세기 초 동래지역의 인구와 주거양태", 역사와 세계, 37, pp.37~68 (2010), 효원사학회
- 張世浩, "石臺千氏五代六孝古文書 解題, In 石臺千氏五代六孝古文書" (1995), 民族文化
- 정지영, "17~18세기 丹城戶籍에 기재된 戶의 성격", 경제사학, 32 (2002), 경제사학회
- 정진영, "18세기 호적대장 ‘호’와 그 경제적 기반", 역사와 현실, 39 (2001), 한국역사연구회
- 정진영, "조선후기 호적대장 '호(戶)'의 편제(編制) 양상 - 『제주 대정현 하모슬리 호적중초』(1843-1907)의 분석 -", 역사와 현실, (45), pp.227~262 (2002), 한국역사연구회
- 정진영, "조선후기 호적 ‘호’의 새로운 이해와 그 전망, In 단성호적대장연구" (2003),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정해은, "단성현 호적대장에 등재된 호의 출입, In 단성 호적대장 연구" (2003),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韓榮國, "朝鮮王朝 戶籍의 基礎的 硏究", 韓國史學, 6 (1985), 韓國精神文化硏究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