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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幼學戶의 구조와 성격-『丹城戶籍大帳』을 중심으로

Danseong Census Registration(丹城戶籍大帳) and the Structure of the Yuhak-ho(幼學戶) in 19th Century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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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9세기 호적대장에 나타나는 유학호가 나름의 독특한 전형성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 그 특징을 국역편성부세운영상의 문제와 관련하여 국가의 대민지배정책의 변화에서 찾고자 하였다. 19세기 단성호적에서는 일정수준의 호총이 꾸준히 확보된 반면 구총은 크게 감소했는데, 이는 환곡의 戶還이나 군역의 공동납적 운영에서 호총의 산정이 무엇보다도 긴요한 문제였던 반면 個別口, 즉 口摠에 대한 관심은 군역이 개별인신지배의 성격을 상실함에 따라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전해준다. 19세기 유학호의 구성상의 변화는 주호부부 중심의 직계혈연가족을 기본으로 예속인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구체적으로는 노비 1구를 소유한 유학호가 압도적인 비중을 점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당시 사회변동에 직면하여 국가가 호구파악방식을 전변시킨 적극적인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서 특히 戶內에 포섭된 노비 1구가 가지는 의미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런데 호내에 기재된 노비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회의 운영원리상 양반사족의 國役負擔에 대한 특권적 면제가 체제적으로 승인된 적은 없었다. 19세기 지방재정의 구조적 취약성과 빈발한 자연재해로 민의 재생산 기반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지방군현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을 중심으로 原戶를 抄定하여 재원확보를 꾀하고자 했다. 종래 주로 사족에게 부여되었던 幼學職役戶는 군역면제의 특권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다른 직역군에 비해 우월한 戶로 인식되었는데 노비의 소유여부는 안정적 담세능력을 가진 건실한 호로 평가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한편 호내에 기재된 노비의 의미는 국역부과와 관련된 戶 파악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이는 군역이 점차 인신지배의 성격이 탈각되고 戶 단위의 부세로 전환됨에 따라 洞布나 戶布를 양반에게 부담시키기 위한 명분, 즉 奴名으로 出布하는 방식이 호 편제 과정에서 擬制化되어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戶內에 懸錄된 노비 1구는 班戶로서 군포 등 각종 부세를 부담할 수 있는 이념과 명분이 호의 편제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Abstract

The present study attempts to provide a new interpretation of Yuhak-ho(幼學戶) in the 19th century census registration of Joseon in terms of changing policy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The Danseong census registration(丹城戶籍大帳) shows that total number of household(戶摠) remained constant while total number of individual personnels(口摠) significantly declined. This suggests that the total number of household was important in the state granary system and the common charge of military service tax. The change in Yuhak-ho structure witnessed a domination of yuhak-ho with a single household nobi(奴婢), which also indicates the changing focus of government in charging the service tax. Due to the weakness of regional finances and frequent natural disasters in the 19th century, regional counties and prefectures attempted to attain financial security by drafting stable wonhos(原戶). The presence of nobi was an important standard to judge whether a household(戶) had capability to pay the tax. This in turn suggests that it became a fictitious custom to charge yangban(兩班) the military service tax in terms of the name of nobi(奴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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