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임진전쟁기 강화교섭의 결렬 원인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Causes behind the Rupture of Peace Negotiations during Imjin War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연구에서는 임진전쟁기의 강화교섭이 결렬된 이유를 밝히고자 하였다. 강화교섭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의 영토를 할양받으려는 의사를 접었다. 그리고 다만 조선의 왕자를 인질로서 받아들여 전쟁을 승리로 포장하고자 했다.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는 일본의 강화교섭 담당자들이 히데요시가 제시한조선 왕자라는 조건을 히데요시의 양해하에 대체한 것이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파견된 통신사의 형태를 포함하여 책봉사와 통신사 파견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히데요시는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으려 했던 계획이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히데요시는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그러나 즉시 전쟁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 왕자를 인질로 보내라는 조건을 내세운 협상을 시도했다. 교섭과정에서 일본이 제시한 요구조건이 전적으로 조선 왕자였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조선 영토의 할양 문제는 강화교섭의 결렬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전쟁을 막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조선과 명은 사절을 파견하라는 조건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조선의대응이 적극적이지 않다고 판단하였고 재침을 결정했다. 결렬선언부터 재침결정에이르는 교섭과정, 그리고 재침시의 전투지침을 살펴볼 때 재침의 성격은 임진전쟁개전 당초와 달리 대륙 침략이나 영토 분할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전쟁이 아니라,원하는 전리품을 얻기 위한 무력 도발에 가까웠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dentify the causes behind the rupture ofpeace negotiations during Imjin War. Through peace negotiations, ToyotomiHideyoshi gave up on his intention of having the territory of Joseon cededto him. Instead, he decided to take the prince of Joseon as a hostage anddisguise the war as Japan's victory. He consented to the idea that thecondition of prince of Joseon was replaced with Tongshinsa(Joseon envoy)but raised complaints about a series of events that took place in the dispatchprocess of Chaekbongsa(Ming envoy) and Tongshinsa including the form ofdispatched Tongshinsa. He reached a judgment that his plan to end the waras Japan's victory failed and declared the rupture of negotiations. However, there was no immediate outbreak of war. Hideyoshi made anattempt at negotiations with the condition of taking the prince of Joseon as ahostage once again. Considering that taking the prince of Joseon as a hostagewas the full condition claimed by Japan in the negotiation process, it isapparent that the cession of Joseon territory was not the cause of rupture ofnegotiations. Both Joseon and Ming showed positive responses to thecondition of sending envoys, being firmly determined to stop war. Judgingthat Joseon's responses were not active, however, Hideyoshi decided toinvade Joseon for the second time. Judging from the negotiation process fromthe declaration of rupture to the decision of another invasion and the combatguidelines for the second invasion, it is clear that the second invasion wasclose to armed provocation to get trophies he desired rather than a large-scalewar for the invasion of the continent and division of territory.

참고문헌 (55)

  1. "宣祖實錄", ~
  2. "神宗實錄", ~
  3. 黃愼, "국역 해행총재" (1981)
  4. 申炅, "국역 대동야승" (1979)
  5. 柳成龍, "국역 서애전서" (2001), 서애선생 기념사업회
  6. 宋應昌, "(中國文獻珍本叢書)朝鮮史料匯編" (2004), 全國圖書館文獻 縮微復制中心
  7. 東京大學史料編纂所, "島津家文書 淺野家文書 毛利家文書 (『大日本古文書』)", ~
  8. 佐賀県立圖書館, "鍋島家文書 (『佐賀縣史料集成』 3)", ~
  9. 鹿児島縣維新史料編纂所, "舊記雜錄 後編3", ~
  10. "江雲隨筆", 東京大學史料編纂所 2351-3, ~
  11. "兩國和平條件", (日本)國立公文書館內閣文庫 168-0042, ~
  12. "南禪舊記", (日本)國立公文書館內閣文庫 192-0267,8, ~
  13. "仙巢稿", (日本)國立公文書館內閣文庫 205-0083, ~
  14. 續群書類從完成會, "義演准后日記 ((史料纂集)義演准后日記)", ~ (1976)
  15. "中山家記", 東京大學史料編纂所 謄寫本 2073-411, ~
  16. 堀杏庵, "朝鮮征伐記" (1912), 集文館
  17. 林羅山, "豊臣秀吉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古2531-2, ~
  18. 大關定祐, "增補朝鮮征伐記" (1917), 國史硏究會
  19. 北豊山人, "文祿慶長朝鮮役" (1894), 博聞社
  20. 大森金五郞, "文祿の役に於ける媾和談判の一節", 歷史地理, 7-8 (1905)
  21. 德富猪一郞, "『近世日本國民史』豊臣氏時代 朝鮮役 上巻·中卷·下卷" (1922), 民友社
  22. (日本)參謀本部, "日本戰史 朝鮮役" (1924), 偕行社
  23. 中村栄孝, "日鮮關係史の硏究 中" (1969), 吉川弘文館
  24. 北島万次, "朝鮮日々記·高麗日記" (1982), そしえて
  25. 鄭樑生, "明·日關係史の硏究" (1985), 雄山閣出版
  26. 松田毅一, "十六·七世紀イエスズ會日本報告集 第Ⅰ期第2卷" (1987), 同朋舎出版
  27. 北島万次, "豊臣政權の對外認識と朝鮮侵略" (1990), 校倉書房
  28. 山室恭子, "黃金太閤" (1992), 中央公論新社
  29.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1999), 역사비평사
  30. 中野等, "秀吉の軍令と大陸侵略" (2006), 吉川弘文館
  31. 鳥津亮二, "小西行長" (2010), 八木書店
  32. 寒川旭, "秀吉を襲った大地震 ―地震考古學で戰國史を讀む" (2010), 平凡社
  33. 中村德五郞, "日明媾和破裂之顚末", 史學雜誌, 8 (1897)
  34. 中村栄孝, "文祿·慶長の役を中心とせる外交史情", 歷史敎育, 12(8) (1937)
  35. 大庭脩, "豊臣秀吉を日本國王に封ずる誥命について —我が國に現存する明代の誥勅", 關西大學東西學術硏究所紀要, 4 (1971)
  36. 山本博文, "文祿の役における講和勅使の舟の調達をめぐる小西行長と島津忠恒", 海事史硏究, 36 (1981)
  37. 小野和子, "山根幸夫敎授退休記念 明代史論叢" (1990), 汲古書院
  38. 佐島顕子, "秀吉の「唐入り」構想の挫折と小西行長の講和交渉", 福岡女學院大學紀要, 2 (1992)
  39. 佐島顕子, "壬辰倭乱講和の破綻をめぐって", 年報朝鮮學, 4 (1994)
  40. 金文子, "文祿·慶長期に於ける日明講和交渉と朝鮮", 박사, pp.1995
  41. 三木聰, "福建巡撫許孚遠の謀略 ―豊臣秀吉の 「征明」 をめぐって―", 高知大學人文學部 人文科學研究, 4 (1996)
  42. 河上繁樹, "豊臣秀吉の日本國王冊封に關する冠服について—妙法院傳來の明代冠服—", 京都國立博物館學叢, 20 (1998)
  43. 韓明基, "임진왜란기 明·日의 협상에 관한 연구 ―명의 강화 집착과 조선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國史館論叢, 98 (2002)
  44. 三木聰, "万暦封倭考(その1) ―万暦22年五月の 「封貢」中止をめぐって―", 北海道大學文學研究科紀要, 109 (2004)
  45. 三木聰, "万暦封倭考(その2) ―万暦24年五月の九卿·科道會議をめぐって―", 北海道大學文學研究科紀要, 113 (2004)
  46. 跡部信, "小牧·長久手の戰いの構造 戰場論 上" (2006), 岩田書院
  47. 村井章介, "慶長の役開戰前後の加藤淸正包圍網", 韓國朝鮮文化硏究, 10 (2007)
  48. 跡部信, "秀吉獨裁制の權力構造", 大阪城天守閣紀要, 37 (2009)
  49. 中野等, "「取り沙汰」される「唐入り」", 九州文化史硏究所紀要 (2010)
  50. 기타지마 만지, "한일 교류와 상극의 역사" (2010), 경인문화사
  51. 동아시아 세계와 文祿·慶長의 役 ―조선·琉球·일본에 있어서 대명외교의례의 관점에서―, In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3권(제2분과 일본편), "구와노 에이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 (2010)
  52. 跡部信, "豊臣政權の對外構想と秩序觀", 日本史研究, (585) (2011)
  53. 김문자, "豊臣秀吉의 冊封問題와 壬亂期의 講和交涉 : 정유재란의 원인을 중심으로", 중앙사론, (36), pp.253~288 (2012), 중앙사학연구소
  54. 김경태, "임진전쟁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강화조건 연구", 조선시대사학보, (68), pp.81~107 (2014), 조선시대사학회
  55. 김경태, "임진전쟁기 강화교섭 연구", 박사, 한국사학과, pp.2014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5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