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명(對明), 대조선(對朝鮮) 인식 -1593년의 명・일 강화교섭을 중심으로-
Toyotomi Hideyoshi’s perception on Ming & Joseon -Focusing on the peace negotiation in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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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1593년의 명・일 강화 교섭을 중심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더 나아가 도요토미 정권의 대명(對明), 대조선(對朝鮮) 인식을 밝혀내고, 그것이 강화교섭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1장에서는 1593년 명・일 강화교섭에 임하면서 히데요시가 작성한 문서를 바탕으로, 그가 제시한 강화 조건을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히데요시가 제시한 강화 조건이 전국시대 강화 조건의 연장선에 있음을 지적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히데요시가 천황가와 명 황가의 혼인 동맹,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감합 무역의 재개를 요구했다고 정리했다. 조선의 경우, 이미 일본에 복속한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고, 그에 따라 왕자와 대신들을 인질로 일본에 보내고, 대신들이 히데요시의 명령을 어기지 않겠다는 내용의 기청문을 작성 및 제출하도록 하라는 것으로 조항을 해석하고, 이를 통하여 조선의 자발적인 복속 표명을 요구했다고 보았다.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은 전국시대 무가 간의 관례를 그대로 가져와 명과 조선을 상대로 적용한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양상은 히데요시를 비롯한 도요토미 정권이 일본의 관습, 상식 등이 명과 조선에도 그대로 통용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타났다. 2장에서는 이러한 히데요시의 사고방식을 명의 사절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확인했다. 명 사절은 히데요시의 사고방식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도요토미 정권의 논리를 정면에서 부정했다. 도요토미 정권도 이러한 명 사절의 논리를 수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사고방식의 차이, 용어에 대한 이해의 차이와 같은 인식의 어긋남을 상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렇게 인식의 차이를 메우지 못한 채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은 명 사절에게 전달되었다. 그 결과, 해당 조건은 명과 조선 어디에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였다. 그 후, 조선에서 주둔하고 있던 고니시가 명과의 교섭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해당 조건들은 명의 책봉 체제에 걸맞은 조건들로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다. 3장에서는 1593년 이후의 강화교섭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1593년 강화교섭에서 나타났던 히데요시의 대명, 대조선의 인식이 어떻게 유지 또는 변화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1594년 12월의 나이토 조안의 명 대신들과의 필담, 1595년 5월 히데요시가 발급한 문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하여 도요토미 정권의 대명 인식은 변했지만, 대조선 인식은 변하지 않았음을 지적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article focuses on the peace negotiations in 1593, and examined the perceptions Toyotomi Hideyoshi and the Toyotomi administration had on Ming and Joseon. Toyotomi Hideyoshi wrote two documents at that time of the peace negotiation of 1593. By analyzing those documents, it was possible to point out that Hideyoshi was purposing mainly two things. One was allying with Ming by the merriage between Ming and Japan and the resumption of mutual trade based on the alliance, and the other was exacting obedience from Joseon by demanding to submit prince of Joseon as a hostage and written statement by officials of Joseon stating that they would not violate Hideyoshi's orders for now and ever. The conditions that Hideyoshi requested to Ming and Joseon were exact same with those which were frequently used throughout the Sengoku period in Japan. But Hideyoshi's requests were denied by the envoys who were in Nagoya for the peace negotiation. The reason was the requests didn’t make any sense to them. As a matter of fact, the conditions were based on the customs which were came up in Japan throughout the Sengoku period. Hideyoshi thought that Japanese customs and common sense would make sense to Ming and Joseon as it does in Japan. But not only the envoys but also the people in Ming and Joseon, for example, the King of Joseon(Seonjo) and the government officials of Ming didn’t understand it at all. Due to this difference in perception on each other, those documents could not be reported properly to the royal court of Ming or Joseon. So after the peace negotiation, Konishi Yukinaga who was stationing in Joseon had to adjust those conditions to fit in tributary system of Ming to keep the peace negotiation on. As the result, Hideyoshi’s perception on Ming had changed from a country that customs of Japan would make sense to that does not. On the contrary, his perception on Joseon did not had changed, so he kept requesting Joseon to submit prince as hostage to show their voluntary obe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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