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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연구의 제 문제 -임진・정유재란 발발 원인에 대한 재검토-

Subjects of Study i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Reexamination on the cause of outbreaks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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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임진・정유재란의 전쟁 원인에 대해 최근 일본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정유재란 발발배경으로 논의되고 있는 일본 측의 ‘조선왕자의 來日 문제’를 하데요시가 필리핀諸島長官에게 보낸 서장을 통해 ‘조선 남부 경상도 지역의 영토 확보와 무역재개’와 관련 있음을 고찰하였다. 또한 전쟁 발발 전후로 히데요시가 발급한 문서를 보면 임진왜란을 일으킨 궁극적인 목표가 조선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과 선교사들의 기록에도 히데요시의 명 정복의도가 그의 명예심과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였다. 결국, 히데요시 정권의 기본적인 권력구조는 전국을 지배하는 일원적인 지배체제가 아니었고, 동시에 여러 지방의 大다이묘들을 압도할 만큼 충분한 군사력을 소유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군역 동원을 통해서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여 집권적인 권력 편성을 최상위 목표로 한 뒤, 명까지 정복하여 자신의 공명심과 명예욕을 높이면서 영토 확장을 목표로 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하자 강화협상을 통해 조선의 부산, 경상도 남부 지역만이라도 무역 거점으로 두고, 전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강력한 국내 지배질서를 형성하려 했던 것이다. 즉 대외적인 긴장관계가 아직도 히데요시 정권에서는 필요했던 것이다. 부연하면, 히데요시는 정유재란 시기를 전후로 동아시아 주변국에 복속과 입공을 강요하면서 특히 필리핀과의 무역을 강조했다. 지속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서 오사카-후시미-나고야-조선-필리핀이라는 군수경제를 통해 일본 열도 전역의 지배 강화를 도모하려 했다. 이런 배경 하에서 경상도 남부 지역, 부산은 무역관계 구축의 거점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정유재란의 발발 원인은 명분적인 ‘조선왕자의 來日 문제’ 가 아니라 당시 일본의 권력구조와 무역환경과 연관된 ‘조선 남부 경상도 지역의 영토 확보와 무역재개’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cause of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which has been discussed so far in Korea and Japan. In particular, I introduced a study that revealed the cause of war by Hideyoshi, which recently became a topic in Japan. In addition, around the 7th sexagenary cycles of the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I reexamined the ‘issue of visiting Japan by the prince of Joseon’ which is argued as the background of an outbreak of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by Japan. As a result, it is indisputable that Hideyoshi did not start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gainst the Joseon only according to documents issued by Hideyoshi around the time of the outbreak of war. I also paid attention to consistent records of missionaries that Hideyoshi’s intention to conquer Ming dynasty was to raise his honor and authority. However, the basic power structure of Hideyoshi regime was neither nationwide unitary governance system nor he had military power enough to prevail daimyos of a few regions simultaneously. Therefore, it seems that he had the highest goal of centralized power formation by strengthening his foundation through military mobilization, and aimed to expand territory and raise his ambition and honor by conquering the Ming dynasty. As the war was not going in his favor, he seemed to secure Busan and Southern Gyeongsang-do area of Joseon through peace negotiations to secure a base for trade. In this regards, Hideyoshi emphasized subjection and payment of tribute to marginal states of East Asia and the Philippines while delcaring the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especially, he emphasized trade with the Philippines. It seems that he aimed to strengthen his control over entire Japanese islands through military economy of Osaka- Fushimi-Nagoya-Joseon-Philippines for the sake of continuous conduct of war. Under such a background, he had to secure Southern Gyeongsang-do area and Busan.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understand the cause of outbreak of the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as ‘securing territory in southern part of Gyeongsand-do, Joseon and reopening trade’ rather than ‘issue of visiting Japan by the prince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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