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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명일 교섭의 초기 전개와 조선의 대명 교섭

Early Development of Ming-Japan Negotiations and Joseon-Ming negotiations during Imj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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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고의 목적은 1593년 명일 교섭의 초기 전개 및 해당 시기의 조선의 대명 교섭을 검토해보는 것에 있다. 일본군이 한성부에서 철수한 뒤, 히데요시는 명의 사과와 “강화”를 요구하였으며 조선을 대상으로는 “신종”을 요구하였다. 반면 명 조정에서는 히데요시의 책봉을 추진하고자 했다. 명일 교섭을 반대한 조선은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과는 화친할 수 없다는 기조를 분명히 하며 요해처 방어 위주 및 히데요시의 책봉을 추진하는 경략 송응창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가장 큰 무기는 조명 조정 간의 신뢰 관계였다. 조선은 사대 외교를 통해 명 조정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양국 간의 신뢰 관계는 조선이 명 경략 송응창 혹은 명 조정과 교섭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일정 부분 송응창의 양보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임진왜란기 조선의 대외 교섭 능력은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review the initial development of the Ming-Japan negotiations in 1593 and Joseon’s negotiations during that period. After the Japanese army withdrew from Hanseongbu, Hideyoshi demanded an apology and “Reconciliation” from the Ming Dynasty and a “Subordination” for Joseon. On the other hand, the Ming government tried to promote Hideyoshi’s installation. Joseon, excluded from the Ming-Japanese negotiations, found itself in an awkward position. However, Joseon made it clear that they could not reconcile with Japan and tried to actively engage in negotiations with Sòng Yìngchāng, the head of Joseon-related issues in Ming government. He was planning Hideyoshi’s installation and defense of rough terrain in Korean peninsula. Joseon’s greatest weapon was the trust between Joseon and Ming. With The trust between two countries, Joseon negotiate with Sòng Yìngchāng, and even led to concessions from him. It is judged that Joseon’s foreign negotiation ability during Imjin war needs to be interpreted more clea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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