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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이전 대한제국 원수부의 군무정책 강화와 군사운영의 성격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Military Policy and Military Operations The Marshal Headquarters in The Great Han Empire Prior to the Russo-Japanes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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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논문은 대한제국기 원수부의 기획으로 실행되었던 당대 군사운영의 궁극적 목적이 ‘國防實現’에 있었다는 것을 규명한 연구이다. 주지하다시피 군사부문은 근대사회의 핵심 분야로 정치・경제・문화 등과 접합하여 국가제도를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富國强兵’ 그 자체는 근대국가가 지향한 목표이기도 했다. 창설 이후, 군사부문을 총괄했던 원수부는 현실화된 대외적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점유하고자 했던 러・일 양국이 군비경쟁을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양국의 충돌설은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실제 양측 본국의 명령하달에 따라 병력이 이동하는 등 대한제국의 대외위기의식은 점증하였다. 한편 의화단운동의 확산에 따라 국경지역에서의 소요는 빈번해졌고 8개국 연합군의 청국 내 병력투입이 가시화되자, 대한제국은 「원수부관제」 개정과 군비확충을 통해 ‘軍事優位’정책을 본격화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軍務중심의 국정운영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게 된 것이다. 의화단진압전쟁의 발발로 국경지역에서는 청비의 대규모 침략과 피난민 유입에 따른 제반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원수부는 국경지역에 진위대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원하여 병력이 주밀하게 배치된 ‘線形防禦’를 실현하였다. 이를 통해 외세침략의 ‘媒介的 要因’이었던 청비를 격퇴하여 국외세력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었다. 한편 내부소요를 진압하여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대외적으로 현시해야만 했다. 러시아 및 일본이 다방면에서 개입 명분을 탐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지방 진무는 주요 거점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상황발생지역에 병력을 신속히 투입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외교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외국인 보호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외에도 원수부는 군 감찰을 통해 군대 출주지역의 안정을 도모했고, 전몰군인에 대한 제도적 보훈을 실현하는 등 군 기강확립 및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전이된 위협과 내부에서 발생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원수부는 군무정사를 총괄하였고, 이를 통한 군사운영은 국경지역 방어태세 강화와 내부안정을 통해 외세의 개입을 미연에 방지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비록 이 시기 외세의 군사력은 압도적이었으나, 원수부는 기존 정부조직을 상회하는 권한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여 당대 정국운영의 최우선 과제인 국방실현에 매진할 수 있었다.

Abstract

Since its establishment, The Marshal Headquarters that directed the military affairs had to respond to the realized foreign threats. Because both Russia and Japan that wanted to occupy the impact on the Korean Peninsula continued arms race. Meanwhile, the turmoil in the border areas became frequent in accordance with the spread of the Boxer Rebellion(義和團事件), and as the eight countries allied forces became visualized, The Great Han Empire regularized ‘the military superiority police’ through the revision of 「Marshal Headquarters’ system」 and the expansion of armaments. The Great Han Empire hereby became to set government centering on the military operations institutionally. Due to the outbreak of war to suppress the boxers, the large-scale invasion of the Qing bandit(淸匪) and the overall problems followed by the influx of refugees. On this, Marshal Headquarters reinforced the military guard troops extensively in the border areas and realized ‘the linear defense’ which was arranged circumspectly by troops. Through this, the Qing bandit, that is a mediatory factor, was able to be repelled and the intervention of foreign forces blocked. Meanwhile, internal turmoil had to be suppressed and the power of the central government had to be shown abroad since Russia and Japan were navigating the intervention cause in various ways. Therefore, local appeasement was made in the form of the stationed troops on the key points and putting the military troops on the area where the situation took place. In this regard, the foreign protection, which could be extended to foreign affairs, was an important issue. In addition to this, Marshal Headquarters tried to achieve stability in the region where the troop was dispatched through the military inspection and made an effort to establish fundamental principles and improve morale of the military such as the realization of institutional care for the fallen sold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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