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 '金憲昌 의 亂'에 대한 연구 현황과 과제
The Trends and Tasks of the Research on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during the Late Shilla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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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 하대 김헌창의 난에 대한 그간의 연구 현황은 1980년대 중반까지의 연구에서는 김헌창의 난을 부분적으로 다루면서, 사건의 성격을 김주원계와 김경신계 사이의 왕위 쟁탈전 연장, 혹은 무열왕계의 왕위부흥운동으로 보기도 하였다. 또는 인사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반란의 원인을 찾거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중앙 귀족과 지방호족의 합작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이후의 연구는 김헌창의 난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즉 새로운 국호와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신라와는 다른 정치 체제를 구상하려 하였고, 지방체제의 위상이 점차 강화됨으로써 후삼국의 정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헌창의 난과 관련한 연구성과는 김주원의 가계 동향, 헌덕왕?흥덕왕의 정국, 반란을 진압하였던 신라군의 성격에 대한 것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한편으로 김헌창의 난을 비롯한 한국사에서의 내란에 대해서는 이를 군사사나 전쟁사의 영역에서 다루지 않고, 주로 정치사(정치적 변란)나 민중항쟁의 입장에서 다루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집단이 거병한 대규모 군사 반란은 단순히 정치적 변란으로 규정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 군사사학자들은 내란을 군사사의 영역에서 적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Abstract
As for the trends of the research on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during the late Shilla period, most of the studies till the mid-1980s dealt with the rebellion only partially, and considered the nature of the incident in terms of the extension of the struggle for the throne between the Kim Juwon lineage and the Kim Gyeongsin lineage or the movement of the King Muyeol lineage to recapture the throne. There are also studies that look for the causes of the revolt in complaints about the personnel policy at that time or the collaboration of central aristocrats and local powers with certain political purposes. However, studies since the late-1990s have been more positive in their assessment of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In other words, they focused on the attempt of Kim Heonchang and his group to establish a new regime or dynasty that uses a new country name and era name, as well as on the fact that the reinforcement of the local powers gradually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Later Three Kingdoms. This study examined the studies on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by dividing them into the researches on Kim Juwon’s family, on the political situations under King Heondeok and King Heungdeok, and on the nature of the Shilla armed forces that suppressed the rebellion. Rebellions in Korean history, including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 are generally not dealt in the field of military history or war history, but approached from the perspective of political history (political disturbance) or popular uprising. However, there are clear limitations in considering a massive military revolt mounted by a group with definite political purposes simply as a political disturbance. Recently, there are rising voices among military historians that rebellions need to be discussed more actively in the field of milit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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