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전반 신라의 사회변동과 지방사회
Social Transformation and Local Society of Sil-La in the First Half of the 9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9세기 전반 신라 지방사회의 성장은 이후 신라를 멸망하게 만든 호족 세력 형성의 밑바탕이 되었다. 지방사회에서 재지세력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했다. 『三國史記』에는 지방으로부터 서상물의 진상과 특이현상등의 보고가 김헌창 부자의 난(825)이전에는 빈번하게 기록되었지만 이후 거의 기록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지방사회는 중앙정부와 더욱 이완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헌창 부자의 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방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오던 지방재지세력들의 성장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三國史記』 흥덕왕 3년(828) 한산주 표천현의 ‘速富之術’기사는 사무역의 활성화로 인한 교역을 위해 비합법적인 품목을 제조하거나 채취하여 부를 축적하거나, 때로는 직접적으로 노비 약매를 행하거나, 심하면 해적 활동을 통해서 ‘速富’를 이루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흥덕왕 3년(828)에 나란히 배치된 장보고의 청해진 설진 명분의 기사와 함께 서남해의 해적 소탕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興德王陵碑文」의 편린을 종합하여 해석하여 보면 청해진과 당성진 설진 등으로 해적과 도적이 퇴치된 지방에서도 규모가 커진 해상 활동에 맞추어 지방민들의 경제 활동도 더욱 왕성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방재지세력들이 정치적 이상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에서 지방을 지배할 수 있는 경제적 부의 축적으로 삶의 지향점을 옮긴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Abstract
The first half of the 9th century, the development of Sil-La local society became the foundation of formation of powerful family which made Sil-La dynasty collapsed. And the local society forces needed economical bases to develop. Since before ‘Kim, Hunchang father and son’s rebellion’(825), the reports about presents to the king and unusual movements were frequently recorded in Samguk Sagi(三國史記), but after the uprising, those were hardly ever recorded, we know that the local authorities drifted farther and farther apart from the central one. It can be said that the ‘Kim, Hunchang’ father and son’s rebellion(825) promoted the growth of local forces who had already dominated the local society for a long time. Sokbujisool(速富之術)-a skill rapidly becoming a rich- of Pyochun-hyun, Hansan-Ju in the third year of King Heungdeok(828), is estimated that the local forces wanted to achieve the wealth through the production of unlawful items to accumulate wealth, sometimes for direct trading, or for piracy activities. It is considered that the inside stories of Samguksagi in King Heungdeok(828)that tell about Sokbujisool(速富之術) and the installation reason of Chunghae Jin are commonly associated with the sweeping of pirates in the Southwest Sea. Synthesizing the parts of the royal tomb inscription of King Gwangdeok, it is presumed that the economic activities of local people became more active since the thieves and pirates had been eradicated by being set up Cheong Hae Jin(淸海鎭) and Dang Sung Jin(唐城鎭). This can be seen as a result of shifting the point of life as the accumulation of economic wealth that can control the localities in reality rather than seeking political ideals. Sokbujisool(速富之術)-a skill rapidly becoming a rich
참고문헌 (65)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 "燕巖集", ~
- "山林經濟", ~
- "東史綱目", ~
- "新增東國輿地勝覽", ~
- "高麗史", ~
- "高麗史節要", ~
- "朝鮮王朝實錄", ~
- "舊唐書", ~
- "冊府元龜", ~
- "唐會要", ~
- "資治通鑑", ~
- "太平廣記", ~
- "禮記", ~
- "唐律疎義", ~
- "孔叢子", ~
- "入唐求法巡禮行記", ~
- "日本後紀", ~
- 강나리, "新羅 下代 渡唐留學의 성행과 그 배경", 한국고대사연구, (90), pp.161~193 (2018), 한국고대사학회[DOI]
-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목간』윤선태 판독", ~ (2008)
- 권덕영, "新羅下代 西·南海域의 海賊과 豪族", 한국고대사연구, (41), pp.299~333 (2006), 한국고대사학회
- 김주성, "신라하대 왕실의 지방통치", 신라문화, (26), pp.101~111 (2005), 신라문화연구소
- 김택민, "譯註唐律疎義" (1994), 한국법제연구원
- 김창겸, "신라시대 漢山州에 대하여", 중앙사론, 21 (2005)
- 김창겸, "9세기 일본 서부 연안에 나타난 신라인들", 신라사학보, (26), pp.301~336 (2012), 신라사학회
- 김창겸, "9세기 신라인의 출현에 대한 일본의 대응", 신라사학보, (28), pp.111~162 (2013), 신라사학회
- 김창석, "菁州의 祿邑과 香徒 ―신라 하대 지방사회 변동의 일례―", 신라문화, (26), pp.137~156 (2005), 신라문화연구소
- 박용국, "新羅 憲德王代 金憲昌의 亂과 晉州地域", 영남학, (37), pp.249~283 (2005), 퇴계연구소
- 朴漢卨, "羅末麗初의 西海岸交涉史 硏究", 國史館論叢, 7 (1989)
- 박현규, "浙東 연해안에서 新羅人의 수로교통 -수로 유적과 지명을 중심으로-", 신라문화, (35), pp.235~252 (2010), 신라문화연구소
- 손흥호, "9세기 전반 신라의 정치동향과 충공의 역할", 한국고대사연구, (83), pp.301~334 (2016), 한국고대사학회
- 신정훈, "한국 고대의 서상과 정치" (2013), 혜안
- 윤선태, "新羅 中代末~下代初의 地方社會와 佛敎信仰結社", 신라문화, (26), pp.113~135 (2005), 신라문화연구소
- 윤선태, "「新羅村落文書」 중 ‘妻’의 書體 -문서의 작성연대와 관련하여-", 木簡과 文字, (18), pp.67~82 (2017), 한국목간학회[DOI]
- 李基東, "新羅 興德王代의 정치와 사회", 國史館論叢, 21 (1991)
- 李基東, "新羅社會史硏究" (1997), 一潮閣
- 이기동, "9세기 신라사 이해의 기본과제- 왜 신라는 농민반란의 일격으로 쓰러졌는가? -", 신라문화, (26), pp.7~19 (2005), 신라문화연구소
- 李基白, "新羅政治社會史硏究" (1974), 一潮閣
- 이기봉, "新羅 憲德・興德王代의 災異와 정치・사회적 영향", 역사와경계, (100), pp.241~269 (2016), 부산경남사학회
- 이문기, "신라 하대 정치와 사회 연구" (2015), 학연문화사
- 李宇太, "韓國金石文集成7" (2014), 韓國國學振興院
- 이영호, "신라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 (2014), 지식산업사
- 이병도, "국역삼국사기" (1986), 을유문화사
- 이현숙, "나말여초 최치원과 최언위", 영남학, 2(35), pp.187~232 (2004), 퇴계연구소
- 李熙德, "韓國古代自然觀과 王道政治" (1999), 혜안
- 전덕재,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6" (2016), 경상북도
- 정구복,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20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정요근, "통일신라시기의 간선교통로 - 王京과 州治·小京 간 연결을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연구, (63), pp.147~190 (2011), 한국고대사학회
- 정청주, "신라말ㆍ고려초 海上勢力의 대두와 그 역사적 의미 - 왕건의 海上勢力 장악을 중심으로 -", 역사학연구, (59), pp.27~64 (2015), 호남사학회
- 정혁수, "文武王의 絹布 규격 조정과 통일정책", 신라사학보, (38), pp.317~352 (2016), 신라사학회
- 조인성, "미륵신앙과 신라사회", 진단학보, 82 (1996)
- 주보돈, "韓國 古代 村落史硏究의 進展을 위하여-新羅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48), pp.5~49 (2007), 한국고대사학회
- 주보돈, "新羅 下代 金憲昌의 亂과 그 性格", 한국고대사연구, (51), pp.233~279 (2008), 한국고대사학회
- 주보돈, "三國遺事』紀異篇「興德王 鸚鵡」條의 吟味",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8 (2017)
- 채웅석, "한국 고대 香徒의 조직과 역할", 한국고대사연구, (81), pp.179~220 (2016), 한국고대사학회
- 최광식, "新羅 下代와 崔致遠",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8 (2017)
- 하일식, "고려 초기 지방사회의 주관(州官)과 관반(官班)", 역사와 현실, 34 (1999)
- 하일식, "신라 말, 고려 초의 지방사회와 지방세력 -향촌 지배세력의 연속성에 대한 시론-", 한국중세사연구, (29), pp.43~79 (2010), 한국중세사학회
- 한영화, "신라와 고려의 형률 운용과 계승성 - 모반죄·불효죄와 결장배류형을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연구, (80), pp.195~228 (2015), 한국고대사학회
- 한준수, "신라하대 軍鎭세력의 대두와 율령질서의 이완", 한국고대사탐구, (20), pp.109~144 (2015),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 한준수, "香徒를 통해서 본 신라 中·下代 지방사회의 변동", 한국학논총, 49, pp.109~138 (2018), 한국학연구소[DOI]
- 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4卷" (1969), 鈴木學術財團
- KOMIYAHIDETAKA, "唐 憲宗代의 對藩鎭政策과 國際關係", 중국고중세사연구, (36), pp.347~379 (2015), 중국고중세사학회[DOI]
- 야마다 후미토, "新羅 村落文書의 작성 年代에 관하여", 대구사학, 133, pp.445~451 (2018), 대구사학회[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