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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시과에서 시지柴地의 의미와 활용

The Meaning and Utilization of Siji (柴地) in Goryeo Jeonsigwa (田柴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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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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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과에서 시지가 제도적으로 처음 마련된 것은 976년(경종원년)이었다. 이후 개정과 경정 전시과를 거치면서 시지의 분급 액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그러나 고려의 토지제도 분급 추이를 살펴보면 시지는 줄어들기보다는 추가되었다. 공해전은 983년(성종2) 지방관이 파견되면서 관청 경비의 마련을 위해 두어졌는데, 10년 후인 993년에는 공수시지라는 이름으로 시지가 추가되었다. 또한, 공음전시는 초기에 토지만 지급되다가 1049년(문종3)에 양반공음전시법을 제정하면서는 시지도 함께 주어졌다. 이처럼 양반전시과의 시지는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으나 공해전시나 공음전시와 함께 검토하면 전체적으로 전지에 시지를 추가하는 형태로 수렴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지 분급은 고려의 역사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지에서는 땔나무와 기타 생활에 필요한 산림자원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었다. 산림은 공유지로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했으나 풍수지리, 음양설 등의 영향으로 금령이 있어 접근이 제한적이었다. 특히 개경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로 땔감의 소요가 컸으므로 시지를 받은 관료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Abstract

It was in 976 that Siji (柴地) was first organized in the Jeonsigwa(田柴科). After that, as the system is reorganized, the amount of siji decreases rapidly. However, siji was added rather than less, considering the change in land system in Goryeo. Gonghaejeon (公廨田) was created in 983 to provide the cost of the office with the dispatch of a provincial agency. In 10 years later, in 993, siji was added under the name of gongsusiji (公須柴地). In addition, gongeumjeonsi (功蔭田柴) was originally paid only for land (田), and in the year 1049, gongeumjeonsibeob(功蔭田柴法) was enacted and Siji was also given. As such, siji has been shrinking ever since it was first made. However, examine it with Gonghaejeon and gongeumjeonsi, we can see that it was maintained in the form of adding siji. In this regard, paying siji can be said to show the historical character of the Goryeo dynasty. In siji, forest resources needed for firewood and other life were reliably obtained. Forests were free to use as a common land, but access was limited due to the prohibition of feng shui. In particular, since the capital city of Gaegyeong(開京) was a large-scale metropolis, the demand for firewood was so great that the bureaucrats who had received siji were able to live a relatively stab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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