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년 조선인 왜관 난입 사건에 관한 고찰
A study about the event of Joseon people’s trespassing on Japan House in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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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년 2월 5일 대마도로 향하던 문위행 가선이 파선하여 전원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해난 사고가 일어났다. 동년 2월 16일 문위행의 유족 150여명이 익사자 송환을 둘러싸고 왜관에 난입하여 일본인을 폭행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자 관수는 쓰시마번에 급히 이 사실을 알리고, 통사 한 명도 수혈받는다. 조선은 유족의 왜관 난입을 막지 못한 동래부사를 파직하고, 동래부 역관들을 의금부에 잡아 가둔다. 동년 3월 30일 익사자의 위령제가 열리지만 문위행의 유족들은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참석할 수 없었고, 그해 말 왜관에 난입한 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령이 처음으로 제정된다. 본고는 조선인 왜관 난입 사건의 계기로 금령(禁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았고, 또한 최상집이 이 사건을 통하여 어떻게 왜관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여 훗날 거물급 역관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지 그 단초를 제시하였다.
Abstract
A tragic marine accident occurred to Munwihaeng who were heading towards Tsushima domain on 05 February 1703. Their ship was wrecked and everyone on the ship lost their lives. About 150 Munwihaeng’s bereaved families trespassed on Japan House and attacked Japanese people on 16 Febuary 1703. It was because the repatriation of the drowned body was delayed. The Captain of Waegwan urgently reported this unprecedented event to Tsushima domain and also asked to send a Korean interpreter. The ruler of Joseon dismissed Dongraebusa from his job because Dongraebusa could not prevent the bereaved families’ trespassing on Japan House. The ruler also imprisoned Tongnae-bu’s Yeok-Kwan (Tongnae-bu’s interpreters) at Euikumbu. A memorial ceremony for the drowned people was held on 30 March 1703 but Munwihaeng’s bereaved families could not attend the ceremony because of the trespassing event. Also, a law on punishing a person who trespassed on Japan House with death was enacted for the first time in December 1703. This study examined thoroughly the process of making the prohibition because of the event of Joseon people’s trespassing on Japan House. Furthermore, this study presented a clue on how Yeok-Kwan Sang-Jip Choi consolidated his position at Japan House through this event and grew up as an important Yeok-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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