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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지역 한인민족운동과 유진률

Korean Racial Movement in Russia and Yoo Jin-ry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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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유진률, 러시아이름 유가이 니콜라이 페트로비치는 구한말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인언론을 대표하는 『대동공보』와 『대양보』의 발행인으로서 주목된다. 유진률은 1875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러시아로 이주하여 국경지대인 아지미에 살고 있었다. 한국측 기록에 보면, 유진률은 일찍부터 조선에서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일한 것으로 보인다. 유진률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협회에서 간행한 독립신문에 여러 번 글을 투고하고 있어흥미롭다. 그의 글들이 독립신문 1면에 7차례 많은 분량이 실리는 것으로 보아, 당시 유진률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독립협회가 추구하고 있던 개화, 자주, 민권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인물이 아닌가 추정된다유진률은 『해조신문』이 폐간되고 최재형이 『대동공보』를 인수하면서 그와의 친분으로 대동공보에 관여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유진률은 『해조신문』이 폐간되자, 차석보, 문창범 등 35인과 함께 발기하여 신문 재간을 위하여 자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대동공보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임원을 선정할 때 발행인으로 선출되었다. 유진률이 발행인이었던 『대동공보』는 안중근의거와 일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중근은 러시아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한 인물로서  대동공보사 사장 최재형이 회장인 동의회의 구성원이었다. 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의 사무실에서 대동공보사의 유진률, 정재관, 이강, 윤일병, 정순만, 우덕순 등이 모인 가운데 이등박문의 암살을 위한 조직이 이루어졌다. 결론적으로 보면, 유진률은 러시아국적의 한인으로 개화사상을 갖은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이 개화하고 문명화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였고, 그 일환으로서 러시아지역 한인언론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 즉 그는 조선인에 대한 계몽운동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고 필요하다고 인식한 러시아국적의 한인으로서 근대적인 민족운동가였다고 볼 수 있겠다.

Abstract

Yoo Jin-ryoul, whose Russian name is Yugai Nikolai Petrovich, attracts attention as a publisher of Daedong-Kongbo and Daeyang-Bo, which represent Korean press in the Maritime Province in Russia in the Late Period of Joseon. Yoo Jin-ryoul was born in Gyeongheung in North Hamgyeong Province, Korea, in 1875. He moved to Russia and lived in Agimi, which is a border area. According to remaining records in Korea, Yoo Jin-ryoul seems to have worked as a Russian interpreter in Joseon from the early stage. It is interesting that Yoo Jin-ryoul submitted several times to The Independent, published by the Independence Club, in Vladivostok. You can see the status of Yoo Jin-ryoul back then from lots of writings of his that were published seven times on the front page of The Indenpendence. As well, he is also estimated to have been a figure deeply interested in enlightenment, autonomy, civil rights, etc. pursued by the Independence Club. It is estimated that Yoo Jin-ryoul came to be involved in Daedong-Kongbo because of closeness to Choi Jai-hyung as Haejo Shinmun was discontinued and Choi Jai-hyung acquired Daedong-Kongbo. When Haejo Shinmun was discontinued, Yoo Jin-ryoul initiated with 35 others including Cha Seok-bo and Mun Chang-beom to develop fundraising for reissuance of the newspaper. He held a general meeting of stockholders at Daedong-Kongbo Company, and was elected a publisher when executives were selected. Daedong-Kongbo, for which Yoo Jin-ryoul was a pubilsher, is known to be related to the movement of Ahn Jung-keun in a certain way. Ahn Jung-keun developed activities of an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Russia, and was a member of Dong-eui-hoe whose chairman was Choi Jai-hyung, the president at Daedong-Kongbo Company. The group for assassination of Ito Hiro-bumi was organized on 10 October 1909 when Yoo Jin-ryoul, Jung Jae-kwan, Lee Kang, Yoon Il-byung, Jeong Soon-man, Woo Duk-soon, etc. gathered in the office of Daedong-Kongbo Company. In conclusion, Yoo Jin-ryoul was a Korean with the nationality of Russia and the thought for enlightenment. He is estimated to have recognized that education was important for Joseon to be enlightened and civilized and to have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press in Russia as a part of that. That is, he can be viewed as a Korean modern racial movement activist with the nationality of Russia who have recognized that the enlightening movement for the Joseon people was desperately necessary more than any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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