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의 안중근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재해석
A Reinterpretation of An Jung-geun’s Anti-Japanese Activities in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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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러시아에 머무르며 활동했던 기간은 1907년 가을부터 1909년 10월까지의 약 3년이다. 안중근은 이 3년 동안의 활동을 ‘동포의 교육’과 ‘의병의 경영’으로 요약하였다. 그의 의병활동은 1908년 여름 同義會를 통 한 국내진공유격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안중근이 말한 ‘동포의 교 육’이란 러시아지역 한인사회의 동포들을 순방하며 연설과 유세를 통한 교육이었다. 첫 번째가 러시아연해주로 건너가게 된 1907~1908년 겨울의 연해주 한인사회 순방이고, 두 번째가 1908년 여름의 국내진공작전 이후 1908~1909년 겨울의 연해주와 아무르강 연안의 한인사회 순방이었다. 두 차례의 러시아한인동포사회 순방을 통한 안중근의 교육활동은 정 확히 말하면 국내진격을 위한 의병운동의 여건(의병자원자 모집, 군자금 모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점에서 안중근이 러시아지역에서 전개한 교육활동은 장기적 전망에서 훗날을 위한 준비로서의 교육운동 이 아니라, 위기에 처해있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급진적 운동으로서의 의병운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3년 동안 러시아에서 안중근이 전개한 활동의 목표는 의병을 조직하여 국내로 진공하는데 있었다. 당시 연해주에서 명성이 높았던 李範允의 의 병세력을 기반으로 의병조직을 결성한 후, 국경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홍범도 부대와 연합한 후 국내로 진공하면, 민긍호 등 의병부대들이 연 합하여 일본침략세력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안중근의 구상이 었다. 1908년 여름의 국내진공전은 망명 이후 안중근이 러시아 한인사회의 지원과 협력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항일투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내진공전은 안중근이 기대한 바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참담한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유증은 당시 국내진공작전에 참여했던 의병 들은 물론 러시아 한인사회의 의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을 가져왔 으며, 이는 러시아당국의 금지정책과 맞물려 의병운동은 재기불능의 상 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자 제2차로 단행했던 러시아연해주와 아무르강 연안 한인사회 순방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07~1908 년 겨울의 제1차 순방과 비교하여 상황이 급변해 있었고 시세도 크게 변 화해 있었던 것이다. 1909년 2월의 동의단지회(단지동맹)의 결성은 바로 이러한 침체된 상황을 극복하고자 안중근이 주도하여 조직한 결사동맹 이었으나, 워낙 악화된 내외의 여건은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동의회와 동의단지회의 목표는 이처럼 일본군과 대적할 의병을 일으 키는데 있었다. 두 단체의 목표는 같았으나 안중근이 처했던 상황이 달 랐던 때문에 다른 방식과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동의단지회는 동의회 를 계승한 단체로 의병을 일으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으나, 1908년 여름 동의회가 처했던 유리한 조건과 달리 1909년 봄의 상황은 안중근 등 급진 파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안중근과 동의회의 국내진공전은 항일무장투쟁의 선구적 경험으로서 이후의 항일무장투쟁에 계승되어졌다. 1910년 일본의 한국병합에 앞서 전개된 13도의군 창설, 1914년 러일전쟁 1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광복군 정부와 북빈의용단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한·러연합에 의한 대일광복 전쟁, 1915년 21개조 체결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외교적 갈등을 활용하 기 위한 한·중연합의 항일전쟁계획, 3·1운동 이후 1919년 가을이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전개된 만주와 러시아 지역에 근거를 둔 독립군 의 국내진공전 등이 1908년 여름의 연해주의병의 국내진공전에서 그 기 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의 기본전략은 시기에 따른 국내외적 상황, 주도세력과 정치노선 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해외한인무장세력에 의한 최초의 국내 진공작전이라 할 수 있는 1908년 여름 연해주의병의 국내진공작전과 일 맥상통하는 전략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운동을 추진했던 주체들은 안중근과 마찬가지로 급진론자들이었다. 두 번째로 안중근의 동의단지회가 교훈적 전범처럼 1910년대 러시아지 역을 비롯한 해외지역의 한인애국지사들 간에서 계승되어졌다. 의형제결 의동맹을 결성함으로써 독립 달성을 위한 운동에 대한 헌신할 것을 서약 하는 이러한 취지의 의형제 결의는 다른 결사동맹의 경우에 있어서도 대 동소이했다. 세 번째로는 이토오와 같이 한국침략의 선봉에 섰던 일본정부 지도자 들에 대한 암살, 처단계획이 한인유지자들 간에 여러 차례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1912년 7월 유럽 순방을 가졌던 桂太郞 처단계획, 1917년 5월 동 의단지회 맹원이었던 趙應順을 실행책임자로 李剛, 白元甫, 朴永甲 등이 기획한의 중국북경주재 일본공사 林勸助 처단계획 등이 그 좋은 사례이다.
Abstract
An Jung-geun had stayed in Russia almost for three years from the end of November, 1907 to Octover, 1909. An Jung-geun summarized his activities in Russia briefly as follows: the education of Korean compatriots and righteous army activities(euibyeong, 義兵). The activity which An Jung-geun called the ‘education of Korean compatriots’ in Russia was mainly intended to mobilize young volunteers for the righteous army and to collect military fund for weapons and supplies. An Jung-geun travelled around Korean villages in the Russian Far East and delivered speeches to Korean compatriots, firstly in the winter of 1907~1908 and secondly in the winter 1908~1908. In this sense, An Jung-geun’s educational activities in Russia were not based on the strategy of “wanjin undong(gradual advancement)”, but on the strategy of “keupchin undong(immediate advancemnt).” In Russia, An Jung-geun had advocated and sided with the supporters of the ‘keupchin faction.’ When An Jung-geun went to the Russian Maritime Province, he attempted to organize a righteous army troop with the leadership of Yi Beom-yun. When An Jung-geun came to Russia, he wanted to make Yi Beom-yun’ military force advance to the border area where a well-known righteous amry leader, Hong Beom-do was fighting against the Japanese. An Jung-geun hoped that Yi’s and Hong’s righteous army troops would eventually advance deeply into the Korean peninsula and join the righteous army troop whose leader was Min Geung-ho. However, Yi’s refusal of An Jung-geun’s proposal made An Jung-geun find his own way of mobilizing and organizing a righteous army troop with his sworn brothers, Eom In-seop and Gim Gi-ryong. An Jung-geun and his comrades succeeded in gathering eighty-seven young Koreans who volunteered to join the righteous army. The organization of the Dongeuihoe (同義會, Association of Comrades) was the result of the efforts of An Jung-geun and his comrades. The military attack on border areas where the Japanese military troops were defending was not possible without material and spiritual supports of the Korean compatriots in the Russian Far East. Nevertheless, the military attack on the Russo-Korean border area in the summer of 1908 was a complete failure which left a very negative effects on the Korean communities in Russia and following anti-Japanese national movement in the Russian Far East. It was natural that An Jung-geun could not achieve his goal of gathering righteous soldiers and collecting military funds for the second military attack on the Japanese in Korea. Several factors such as the prohibitive and suppressive policies of the Russian government, the internal factional struggle among Korean euibyeong leaders such as Choe Jae-hyeong and Yi Beom-yun, and Choe Jae-hyeong’s refusal to join the righteous army. It was in the unfavorable atmosphere that An Jung-geun decided to organize the Dongeui Danjihoe(Society of Cut Finger). Although the purpose of the two organizations was to mobilize and organize the righterous army, the sitruation around the organizations were quite different. An Jung-geun’s activities left long-lasting influences on anti-Japanese Korean national activities in the Russian Maritime Province and Manchu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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