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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代 吳澄의 心學과 王陽明의 「朱子晩年定論」

元代吳澄的心學与王陽明的“朱子晩年定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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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代의 사상가 王陽明의 「朱子晩年定論」은 먼저 元代의 사상가인 吳澄을 비롯한 虞集 등 草廬學派의 朱陸折衷論의 영향 下에서 형성되었다. 吳澄의 사상은 당시 元 朝廷의 지지 下에서 官學化된 朱子學을 대표하는 許衡의 ‘下達之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朱子 전대의 ‘道問學’과 더불어 心性의 內面的 修養을 중시하는 ‘尊德性’의 의의를 특별히 중시하는 데에 있었다. 吳澄의 朱陸折衷 경향은 기본적으로 朱子學의 正統性을 해치는 것보다는 理學을 새롭게 재건시키려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즉 陸象山의 心學의 專一性과 實踐性을 도입하여 理學 內의 ‘尊德性’과 ‘道問學’의 균형과 겸비하는 전통을 회복시키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吳澄의 心學을 분석해보면 邵雍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게 된다. 그의 朱陸折衷論에서 차지하는 陸學의 역할이란 理學 본래의 內面主義的 전통인 ‘尊德性’의 영역을 확대·보강하는 것에 있었다. 吳澄의 이러한 朱陸折衷論은 그의 수제자인 虞集을 거쳐 明代의 朱陸折衷論과 王陽明의 「朱子晩年定論」에 닿게 된다. 虞集이 주장한 논지는, 즉 朱子가 晩年에 ‘道問學’보다 ‘尊德性’을 중시하여 종전에 訓詁와 注疏에 치중했던 것을 반성했다는 점에 있는데 이는 곧바로 程篁墩의 「道一編」을 거쳐 王陽明의 「朱子晩年定論」에 그대로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王陽明이 「朱子晩年定論」을 出刊한 배경으로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직전에 그가 朱子의 格物論을 반박하고 독자저인 주관주의적 관점의 格物說을 수립하였다는 사실이다. 學界 一角에서는 일찍부터 王陽明의 心學과 陸學을 차별화하여 오히려 陽明學을 朱子學의 비판적 계승자로서 보는 관점이 있어왔다. 王陽明의 「朱子晩年定論」에 반영된 朱陸折衷경향 역시 이러한 독자적인 心學의 완성을 위한 한 단계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吳澄으로 대표되는 元代 朱陸折衷論이나 明代 「朱子晩年定論」에 나타나는 王陽明의 ‘尊德性’의 의의는 각기 心學의 전통을 부활시켜 理學 本來의 內面主義的 영역을 보존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朱子 이후의 理學의 전래를 朱子學과 陸學의 대립구도 下에서 元代 이후 점차 陸學이 재기하여 朱陸折衷論을 거쳐서 王陽明에 이르러 완성되었다는 도식적 이해에는 찬성할 수 없다.

Abstract

明代王陽明的朱子晩年定論的起源是由來元代思想家吳澄的心學、吳澄的心學目標是宗合朱子學和陸學。他雖尊陸象山而不反對朱子。吳澄主張學必以尊德性孝本。他批判偏言語訓釋之末。吳澄的朱陸和會視念影響明代程篁墩的道一編、王陽明的朱子晩年定論也程篁墩的道一編影響下形成的、故王陽明的朱子晩年定論的意義是尊德性的重視。通過朱子晩年定論王陽明完成他的致良知說、他継承吳澄的心學。他批判道問學不批判理學。

참고문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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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吳文正公集", ~
  3. "道園學古錄", ~
  4. "陸象山全書", ~
  5. "王陽明全集", ~
  6. 徐元和, "理學與元代社會" (1992)
  7. 胡靑, "吳澄" (1996), 江書敎育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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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劉宗賢, "陸王心學硏究" (1997), 山東人民出版社
  10. 陳榮捷, "宋學論集" (1982), 台北
  11. 錢穆, "中國學術思想史論叢" (1986), 台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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