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마을지명의 형성과 고착과정
Formation and Fixation Process of Village Names in Ulleu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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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울릉도에서 지명은 조선 후기 수토관이 주변 도서와 산천의 형상에 의거하여 명명하는 데 지나지 않았으나 근대기에 개척령을 전후해서는 입도자가 늘어남에 따라 마을지명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명을 기록한 문헌을 보면, 기록자마다 들은 대로 옮기다보니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방언을 모르는 일본인이 더 심했다. 지명이 잘못 전해지게 된 원인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음을 빌리거나 뜻을 빌려 지명을 표기할 때 기록자마다 다르게 표기했기 때문이다. 구멍바위를 ‘穴巖’과 ‘孔岩’으로 다르게 표기하거나, ‘구미’와 ‘작지’를 저마다 다르게 표기한 것이 이에 속한다. 둘째, 기록자가 지명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거나 발음의 유사성으로 인해 혼돈을 겪어 달라진 경우이다. 현전하 는지명 오류의 대부분이 이로 인해서인데 일본인에 의해 와전된 경우가 많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玄浦를 玄圃로, 石浦를 石圃로, 鶴浦를 鶴 圃로 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셋째, 기록상 혹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글자 수를 줄이거나 두 지명을 하나로 병합한 경우이다. ‘도방청’을 ‘도동’으로, ‘저전동·저전포’를 ‘저동’으로, ‘아륙사’를 ‘사동’으로, ‘통구미동’을 ‘통구동’으로, ‘왜선창’을 ‘창동’으로 바꾼 경우가 이에 속한다. 넷째, 우리말 지명대신 한자지명으로 바꾼 경우이다. ‘대황토구미’와 ‘소황토구미’, ‘골개(谷 浦)’ 등을 태하동, 학포동, 남양동으로 바꾼 것이 이에 속한다. 다섯째, 한인의 고유 지명을 일인이 일본식으로 바꾼 경우이다. ‘구미’를 ‘감 (坎)’으로 바꾼 것, 관음도의 이전 명칭인 방패도가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울릉도는 개척 이전부터 일본인의 왕래가 잦았던 만큼 지명에서도 그 영향이 드리워 있다. 그 결과 현전하는 지명이 잘못 전해지거나 원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된 배경에는 일본인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한인에 의해 와전 된지명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정착했고 해방 후에는 한인에 의해 그대 로답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해방 후에 새로 만들어진 지명도 있다. 조선시대 지명 가운데는 일본인이 명명한 경우가 있고, 일제 강점기의 지명이라 할지라도 조선시대 지명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경우가 있으므로 생성연도에 의거하여 조선시대 지명과 일제 강점기 지명으로 단순 분류하기는어렵다. 이제 울릉도 지명의 오류가 밝혀진 이상 현재 온라인상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바로 수정되어야 하며, 앞으로 발간된『울 릉군지』에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Abstract
Geographical names in Ulleungdo used to be confined to what the inspector had named for the surrounding islands, mountains and streams. However, the number of village names began to rise as the number of people entering the island increased in the modern period. Literature where place names are recorded show errors as the authors wrote as what they heard. This problem is particularly severe when it comes to the names recorded by Japanese who had few understanding of Korean dialect. There are several causes of the misrepresentation of the place names. First, when a place name was written by transcribing the sound or the meaning, the result could vary per person who recorded the name. Second, the recorder could be confused by misunderstanding the meaning of the place name or due to similar pronunciation. That is why the current place names show many errors. Further, the failure of the Japanese to understand Korean dialects aggravated this error. Third, for record purposes or for administrative convenience, the number of characters was reduced or two names were merged together. Fourth, some names were changed from Korean to Chinese characters. Fifth, there were cases where the Japanese replaced Korean names with Japanese names, which resulted in altered meaning of the place name. Ulleungdo had been frequently visited by Japanese people even before it was pioneered, thus the geographical names of the island reflect the influence of the Japanese. The Japanese influence is very significant on the background to the names that have been incorrectly transferred or the names that carry different meaning. The names that had been misrepresented by Koreans settled down as the island went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after the liberation, the names have been followed by Koreans to the present day. Also, there are names newly designated after the liberation. However, some of the place names from the Joseon Dynasty were developed by the Japanese, while some of the geographical names from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ould be an extension of the names used in the Joseon Dynasty. Therefore, it is difficult to simply classify them into place names from Joseon and from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ased upon the year of formation. As the errors of the place names in Ulleungdo have been revealed now, information currently available online should be corrected immediately and reflected in the forthcoming Ulleunggunji (The geography of Ulleung-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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