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독도의 명칭 변천과 ‘독도’ 인식의 연속성
The Transition of Ulleungdo and Dokdo Names and the Continuity of Dokdo Per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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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울릉도·우산도 명칭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우산도’ 인식의 연속성 문제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울릉도에 관한 기록은 ‘우산국’으로 시작해서 ‘울릉도’와 ‘우산도’ 명칭으로 분기되었다. 울릉도는 그 명칭이 流山國島, 武陵島, 茂陵島, 羽陵島, 鬱島, 蔚島, 蔚陵島, 菀陵島 등으로 여럿이고, 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가 다른 경우가 있다. 于山島는 牛山島, 芋山島, 子山島, 三峯島, 蓼島, 蔚陵外島 등이 있었으나 于山島를 주칭으로 한 경우가 가장 많고, 요도와 삼봉도라는 이칭도 보인다. 다만 두 호칭은 주로 함경도에서 목격했을 때 한정하여 보이므로 우산도를 대신하여 붙인 것으로 보인다. 삼봉도는 울릉도를 가리킬 때도 있었다. 우산도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지는 것은 숙종 연간 ‘울릉도 쟁계’를 겪으면서부터다. 이후 『동국문헌비고』에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松島이다.”고 기술됨으로써 우산도가 독도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우산도는 ‘울릉외도’로도 칭해졌다. 정조 연간 우산도를 인지한 상태에서 ‘울릉외도’로 칭하고 이를 일본이 칭하는 松島에 해당시켰으므로 ‘울릉외도’는 독도를 가리킨다. 문헌에서는 우산도 혹은 그 이칭으로 독도를 가리키는 반면 지도에서는 우산도의 크기나 방향으로 보아 독도에 비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지도상의 우산도는 신경준의 지도 계통에 의거한 것이므로 독도를 가리킨다. ‘우산도’라는 명칭은 석도와 독도 명칭이 출현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였고, 인식이 상충하지 않았다. 석도와 독도 명칭의 등장으로 우산도 인식이 단절되었다면 1906년 이후 문헌과 지도에는 우산도로 기술하지 않았어야 하지만, 『증보문헌비고』(1908)도 우산도를 기술했다. 근대기에 전문(傳聞)에 따른 우산도 인식과 실견(實見)에 따른 우산도 인식이 섞이고 일본에서 전도된 호칭이 유입됨으로써 전통적인 인식에서 혼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우산도와 석도-독도를 서로 다른 섬으로 간주한 경우는 없었다. 한국에서 우산도 인식은 일시적인 균열을 겪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기저인식으로 연속되고 있었다. 우산도에서 독도 명칭으로 바뀌어 정착한 후에도 명칭은 병존했고 우산도가 독도라는 인식도 지속되었다. 이런 양상은 일본에서 에도시대에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우산도를 마쓰시마로 부르다가 근대기에 울릉도를 마쓰시마로 바꾸고 우산도를 ‘리앙쿠르 록스’로 대체했다가 ‘다케시마’로 인위적으로 명명한 것과는 그 양상이 매우 다른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problem of continuity in perception of Usando, tracking changes in the names of Ulleungdo and Usando. The records of Ulleungdo and Usando began with the Usanguk and were divided into the names Ulleungdo and Usando. Ulleungdo has various names and Chinese character notations. Usando also had various names and Chinese character notations, but was mainly called Usando. The recognition of Usando became clear only after experiencing the Ulleungdo Incident during the Sukjong era. By writing in the notes of the Dongguk munheon bigo(Reference Compilation of Documents on Korea) "Ulleungdo and Usando both belong to Usanguk, but Usando is Matsushima(松島), which the Japanese say," it became clear that Usando was Dokdo. In the period of Jungjo, Usando was also called Ulleung Wedo(蔚陵外島). With the Korean bureaucracy recognizing Usando, it is called Ulleung Wedo, and the fact that Ulleung Wedo points to Dokdo is evident because Ulleung Wedo corresponds to Matsushima, which Japan calls. However, in the literature, Usando or its name can be seen as Dokdo, but it is sometimes difficult to display Usando as Dokdo on a map. Nevertheless, Usando on the map of late Joseon refers to Dokdo because it is largely based on Sin Gyeongjun's perception of Usando. The name Usando was continuously seen in the literature, even after the appearance of the names Seokdo and Dokdo. Nevertheless, the recognition of Usando, Seokdo, and Dokdo did not collide with each other, and the recognition of B was not cut off. If the names Seokdo and Dokdo appeared and the perception of Usando was cut off, then the Usando should not have appeared after 1906, but in 1908, the names Ulleungdo and Usando were written. In the modern era, Usando's perception was confused, and the name in Japan changed to Korea. Nevertheless, in Korea, Seokdo and Dokdo were never recognized as referring to islands other than Usando . Thus, Korea experienced a temporary crack in the perception of Usando, but was continuously perceived as pointing to Dokdo. Even after Usando settled under the name Dokdo, Usando always appeared in the record, and the recognition that Usando was Dokdo continued. Japan called Ulleungdo to Takeshima in the Edo period, Usando to Matsushima, changed Ulleungdo to Matsushima in modern times, changed Usando to Liancourt rocks and artificially set Liancourt rocks to Takeshima. This aspect is very different from that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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