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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도성안 동부지역의 토지변동 추이와 일본인 토지소유자들

The Land change by time and the Increase of Japanese landowners at the east of Seoul in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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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은 일제강점기 경성 도성안 동부지역의 토지변동 추이와 일본인 토지소 유실태에 대한 실증적 연구이다. 강점 직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했고, 그 과정에서 조선 땅의 상당부분 이 일본정부와 일본인 소유로 넘어갔다고 알려졌지만, 어떤 일본인들이 어느 정도 규모의 땅을 소유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이 글에서는 토지조사사업 때 작성된 1912년 토지조사부, 1917년과 1927년 에 발간된 경성부관내지적목록, 그리고 해방 후에 생산된 귀속재산매각서류(일 명 불하문서)를 통해 1912년 → 1917년 → 1927년 → 1945년간 경성 동부 17개 동의 토지변동 추이와 일본인 토지소유자들의 존재를 추적했다. 앞 3종의 자료에는 각 동리의 지번과 지목, 평수(및 지가) 뿐 아니라 소유자명과 거주주소가 기재되어 있어 토지의 시기별 변동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불하문서에서는 ‘前 일본인 소유자명’을 파악할 수 있다. 분석결과 1912년에는 일본인 120명이 159필 2만 8,680평을 소유하고 있었다. 동부 17개동 전체의 5%이다. 5년 뒤 1917년에는 260명이 420필 5만 7,478평을 소유하여 10.2%로 늘어났고, 다시 10년 뒤 1927년에는 487명이 901필 11만 180평을 차지하여 19.3%를 소유했다. 그 무렵 일본인 인구가 조선인의 1/3 정도 였음을 감안하면 큰 비중이다. 게다가 일본인 토지소유자들은 대개 ‘부재지주’였다. 1912년 일본인 토지소유자의 실거주율은 15.8%에 불과했다. 1917년 45%로 늘어났으나, 1927년에는 27%로 다시 낮아졌다. 원남동을 제외한 16개동 토지소유자의 80%는 타지역 거주자였다. 그들은 대부분 ‘남촌’에 거주자이고, 심지어 일본 거주자도 있었다. 또한 필지수 대비 소유인원 비율은 1912년 1 : 0.75에서 1917년 1 : 0.62, 1927년 1 : 0.54로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졌다. 필지수에 비해 소유인원이 적은 것은 토지소유가 그만큼 더 집중되었음을 의미한다. 동부 17개동의 불하문서 1,313건에서는 일본인 소유자 526명을 확인했다. 이 중 216명은 2건 이상 소유자로 1,003건(76.4%)을 차지했다. 1940년경 경성의 차가율이 6할에 달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일본인 토지소유율은 매우 높았다. 그들 의 토지소유 목적은 거주의 필요가 아니라 대가 경영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Abstract

This article is an empirical study on the land change by time and the increase of Japanese landowners at the east of Seoul in Japanese colonial period.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the colonial authorities carried out a land survey. As a result of that, it has been known that much of the land was transferred to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o the Japanese individuals, but it was not known in detail who and how much have owned the land. I tracked the trend of land changes and Japanese landowners at the east of Seoul through the Land Survey Records in 1912, and Land Survey Register of Seoul in 1917 and in 1927, In addition, I confirmed “the name of the former Japanese landowners” by the Disposal documents that have been produced after Liberation. As a result of the analysis, 120 Japanese persons owned 159 land lots, 8,690 square meters in 1912. It was 5% of the total. In 1917, 260 persons owned 420 land lots, 17,417.6 square meters, it’s up 10.2%. And in 1927, 487 persons owned 901 land lots, 33,387.9 square meters, it’s up 19.3%. Considering that the Japanese population at that time was about a third of the Korean population , this was a large proportion. The actual residence rate of Japanese landowners was 15.8% in 1912, 45% in 1917, and 27% in 1927. They were mostly ‘absent landlords’. Compared to the number of land lots, the number of Japanese landowners have decreased in. It was to 1 vs 0.75 in 1912, and to 1 vs 0.62 in 1917, and to 1 vs 0.54 in 1927. There were 526 Japanese owners of 1,313 cases of the Disposal documents. Among them, 216 persons owned more than two cases, accounting for a total of 1,003 cases (76.4%). Considering the reality that the percentage of tenants was 60% around in 1940, the Japanese land ownership rate was very high. The reason why the Japanese owned the land was not for the purpose of residence, but for the housing rental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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