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의 몽골어 차용어 ‘詔羅赤(조라치)’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Mongolian Loanword ‘jorachi’ in 『Korye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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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高麗史』의 ‘詔羅赤’가 무엇이었는지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高麗史』에서 ‘詔羅赤’가 출현하는 문맥을 해석하였으며, 3장에서는 ‘詔羅赤’에 대한 세 가지 해석(‘下僕’, ‘怯薛’, ‘樂工’)을 검토해 보았다. 검토 결과, 『高麗史』의 ‘詔羅赤’는 일정한 군사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서, ‘詔羅赤’를 ‘下僕’이나 ‘樂工’의 의미로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高麗史』에서 ‘詔羅赤’의 출현 맥락과 고려 후기 兵制 개편 과정 등을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詔羅赤’를 ‘怯薛’의 일종인 ǰulači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국어에서 ‘조라치’가 ‘악공’의 의미를 갖게 된 연유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았다. 이는 ‘詔羅/照羅’와 ‘吹螺’ 사이의 음성상의 유사성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하거나, 몽골어 차용어 ‘쥬라’에 ‘-치’가 결합된 어형의 존재를 가정하여 설명해 볼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高麗史』의 ‘詔羅赤’는 ‘악공’의 의미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본고는 李基文(1993)과는 견해를 달리하였다. 본고의 논의를 통해 ‘조라치’와 관련한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Abstract
This paper tried to figure out what the ‘jorachi’ in 『Koryeosa』 meant. To this end, the context in which ‘jorachi’ appears in 『Koryeosa』 was interpreted in Chapter 2, and based on this, three interpretations of ‘jorachi’(‘servant’, ‘kesig’, and ‘court musician’) were reviewed in Chapter 3. The review revealed that ‘jorachi’ in 『Koryeosa』 had a military function, and it was difficult to say ‘jorachi’ was used to mean ‘servant’ or ‘court musician’. This paper concluded that ‘jorachi’ corresponded to ‘ǰulači’, a kind of ‘kesig’. The study also explored to find out how ‘jorachi’ had come to mean ‘court musician’ in the Korean language, and concluded that this could be explained by the phonetic similarity between ‘jora’ and ‘chura’, or by an assumption that there could be a form in which ‘-chi’ is combined with ‘jura’, a Mongolian loanword. In either case, this paper differs in its opinion from that of Lee Ki-moon(1993) in that it argues that it is difficult to say that ‘jorachi’ in 『Koryeosa』 was used to mean ‘court musician’. The discussion in this paper will provide an opportunity to understand the issues related to ‘jorachi’ from various an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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