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 출토 도관칠국육판은합(都管七國六瓣銀盒)에새겨진 “고리국(高麗國)”의 연대에 대한 연구
The Study on the period of “Kori Kingdom”inscribed on the Six Petaled Silver Vessel with the Seven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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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시안(西安)에서 발굴된 도관칠국육판은합(都管七國六瓣銀盒)에 7개 나라 이름과 인물도가 새겨져있다. 이 논문은 7개 나라 가운데 고리국(高麗國)에 관한 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은합에는 고리국(高麗 國)이란 명문과 함께 깃털관(羽冠)을 쓴 인물도가 있는데 이 인물이 ① 고리 사람(高麗人)이라는 설, ② 신라사람이라는 설, ③ 발해 사람이라는 설, 심지어는 ④ 왕씨 고리(高麗) 사람이라는 설까지 갖가지 주장이 나와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이 은합의 제작연대가 고리(高麗)가 당나라에 항복한 뒤인 9세기(晩唐) 라는 전제 아래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대 측정은 미술사적인 입장에서 은합의 생김새를 가지고 추정한 것으로, 명문에 나온 7개 나라에 대한 역사학적 고찰이나 그림의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한상태에서 추정한 것이었다. 이 논문은 그 인물이 고리국(高麗國)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첫째, 은합에 새겨진 나라들을 자세히 분석해 본 결과 모두 고리(高麗)와 함께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들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와 반대로 9세기에는 고리국(高麗國, 전 37~668)과 토번(吐蕃, 618~842)은 물론이고 808년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무너지면서 소륵(疏勒) 및 바라문국(婆羅門國)과도 교통이 끊어지기 때문에 당나라를 중심으로 7개국이 둘러싸는 천하관을 표시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있었다. 둘째,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는 발해나 통일신라시대 사신들이 만당(晩唐) 때 당나라에서 사리를 분배 받는모습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나라 초인 602년에 고리(高麗)가 수나라 황제로부터 사리를 받았다는 자료를 발굴하여 분석하므로 해서 사리분배도의 장면이 9세기보다 200년 이상 앞서는 7세기 초일 가능성이있고, 은합이 9세기 것이라 하더라도 그릇에 새겨진 장면은 고리(高麗)가 존재했을 당시의 장면으로 봐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사리함의 생김새만 보고 연대를 추정하는 기존 설에 비해 훨씬 신빙성이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합에 나온 고리국(高麗國)은 고리(高麗)가 당나라에 항복하기 이전의 고리국(高麗國)이라고 본다.
Abstract
The six petaled silver vessel(都管七國六瓣銀盒) discovered in Xi’an(西安) in 1979 has an inscription of the names of the seven kingdoms and human figure paintings. This paper concentrates on the part related to the kingdom of the Kori (高麗國) among the seven kingdoms. On the silver vessel, there is an inscription of Kori and a painting of a figure wearing a feathered hat. There have been debates concerning the figure whether he is a personal from ① Kori, ② Silla, ③ Parhae, and even ④ Kori with the last name Wang. These arguments resulted from the premise that the production date of the silver vessel was in the 9th century(Late Tang 晩唐) after Kori was collapsed. This dating was based on the art historical survey with the shape of the vessel, lacking the consideration on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seven kingdoms and the subject of the painting. This paper emphasize two points in oder to prove that the figure was from the Kori. First, after analyzing the kingdoms carved on the silver vessels, they all existed in the same time period with the Kori. On the contrary, in the 9th century, the Tang’s relations were interrupted with not only the Kori (高麗國, BC 37~668) and the Tibet(吐蕃, 618~842) but also the Kashgar (疏勒) and Brahmin (婆羅門國) when Anxi prefecture (安西都護府) was destroyed in 808. Therefore, it is not probable that the painting shows the world view of the Tang in the center as surrounded by the seven kingdoms. Second, currently in Korea and Japan, it is regarded as the scene of the sarira distribution to the envoys from the Parhae or the Unified Silla from the late Tang. But, the paper suggests that by the written source that as early as in 602 in the early Sui dynasty, the Kori was bestowed the sarira from the Sui emperor, the scene of the sarira distribution can be dated to the early 7th century, 200 years earlier. Even if the vessel is the 9th century production, the scene carved on the vessel should be regarded as the scene established when the Kori existed. These kind of study research provides more convincing conclusion comparing the previous studies dating the vessel only on the basis of the style of the sarira case. Thus, the Kori on the silver vessel is the one before the Kori surrendered to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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