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蠟石製舍利壺의 발생과 전개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origination and development of Agalmatolite Sarira jar in Unified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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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납석제사리호는 기벽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절대연대가 확인되는 사례가 많아서 당시 생활용기나 화장묘용 매장용기의 비교편년 자료로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납석제 용기 중에는 다른 용도로 제작되어 사용되던 용기가 사리호로 전용되면서 명문을 새긴 사례가 포함되어 있어 그 제작시기의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제작당시의 쓰임새에서 용도가 바뀐 납석제 용기 중에는 통일신라시대 납석제사리호의 발생 시기를 8세기 중엽으로 보는 통설의 근거가 되는 영태이년명납석제호도 포함되어 주목된다. 지금까지 766년을 절대연대로 보던 이 납석제호는 바닥의 명문과 동체부 명문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기존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용기를 재활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울러 납석제호가 불상에 전용된 목적도 불상조상기의 기록과 무구정광다라니를 넣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유물을 납석제사리호의 출현문제와 결부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766년은 영태이년명납석제호의 절대연대가 아닌 하한연대에 해당하며, 통일신라 납석제사리호의 발생 시기 역시 8세기 중엽이라는 기존의 통설과 달리 9세기 전반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납석제사리호의 출현 배경은 인도의 영향 보다는 동아시아 사리장엄 방식의 전통과 더불어 목기나 금속기의 제작에 이용되던 녹로성형기법이 납석가공기술에 접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신라의 멸망이후 납석제사리용기가 점차 소멸되는 원인은 10세기 이후 납석제 사리용기를 대체하는 고려 도자기의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Abstract
In many cases, absolute age of Sarira jar made of pagodite in Unified Silla has been identified through inscription on its surface. This becomes an important standard to know relative chronicle of then living container or burial container for cremation tomb. But among containers made of pagodite, there were ones which were originally used in other application. Because they had inscription later, it is necessary to be careful to judge the time of production. Among examples, the use of which was changed, was sarira jar made of pagodite inscribed in Yeongtae's second year (永泰二年銘蠟石製壺) - this jar is a ground for the common view that sarira jar made of pagodite in Unified Silla began to be made in the middle of the 8th century. As a result of analysis of contents of inscriptions on floor and body part of sarira jar made of pagodite inscribed in Yeongtae's second year - until now, its absolute age was 766 - it was identified that the container was recycled from a container for other use. Moreover, the purpose of sarira jar made of pagodite was to contain historical record of statue of the Buddha and to enshrine Raśmivimalaviśuddhaprabhānāma-dhāraṇī-sutra, not to enshrine sarira. So it is difficult to connect the relic with sarira jar made of pagodite in terms of the time when sarira jar made of pagodite first began to be made. Accordingly, it was figured out that the year 766 is lower limit on the age of sarira jar made of pagodite inscribed in Yeongtae's second year, not absolute age; sarira jar made of pagodite in Unified Silla appeared in the earlier half of the 9th century, not the 8th century. And appearance of sarira jar made of pagodite was influenced by the tradition of the Eastern Asia's sarira decoration method not India. Furthermore, it is suggested that spinning wheel molding technique which was used to make wooden or metal container could be grafted into technique of processing pagodite. Finally, it is assumed that since fall of Silla, sarira jar made of pagodite had been disappeared gradually, this trend is closely related to the production of Goryeo ceramics which were replaced with sarira container made of pagodite after the 1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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