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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王敎造” : 4∼5세기 고구려 銘文 器物 재검토

“Made by Great King’s order” : Epigraph of the 4∼5th Century Goguryeo(高句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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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현전하는 4∼5세기 고구려 銘文 器物에 대한 시론적 재검토를 진행하였다. 우선, 태왕릉 출토 銅鈴에 대해, 명문 第7字 판독문제를 검토하여 ‘巫’자가 아닌 ‘敎’자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 유물의 형태학적인 측면에 주목해 發聲 기물로서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고, 여러 비교 자료를 통해 權衡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서봉총 銀盒杅 명문에서는 ‘太歲在’라는 太歲紀年法의 잔재가 남아 있는 기년법에 주목해 그 제작연대를 검토하고, 또 기물의 형태 그리고 “太王 + 敎造 + 기물 + 숫자” 라는 명문 형식과 중국 도량형 기물 명문을 비교함으로써 容量일 가능성을 추측해 보았다. 이어서 호우총에서 출토된 壺杅 명문 역시 “제작 시점 + 제작주체 및 제작물 + 숫자”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도량형 기능을 한 기물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이 같은 고구려 도량형 기물 제작과 그것이 신라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 대해 광개토왕 시기 강력해진 왕권의 주도하에 국가 통합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고, 그 일환으로 도량형과 관련된 다양한 기물이 제작되어 국내에 배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4∼5세기 고구려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에 힘입어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Abstract

本文试图去重新探讨4~5世纪高句丽金文资料这一旧课题。首先,有关太王陵出土的铜铃,重新识读铭文第7字,将其读作‘教’字而不是以往大多研究所认定的‘巫’字。而且以形态学的角度去分析铜铃形状,提出很难将其视为敲击发声器物,而更近似权衡的意见。其次,有关瑞凤冢出土的银合杅,关注其铭文中的‘太岁在’字样,认为这是太岁纪年法的遗制,进而去考辩其制作年代。而且以‘太王+教造+器物+数字’这一铭文形式与中国度量衡器铭文作比较,提出此银合杅也可能是度量衡容量的看法。壶杅冢出土壶杅上的‘制作时间+制作主体及器物+数字’铭文结构亦与度量衡器铭文相像,因此也将其推定为度量衡器。最后,对此类度量衡器的制作及发现于新罗地区的问题进行简略地分析,即好太王时期以强有力的王权为政治背景,实施整合并统一规范全国的一系列举措,度量衡器的制作便是其一。统一的政治是以统一的价值判断为基础成立的,单一度量衡制度的实行与中央政府的统一征税有密切的联系,而且也是控制地方势力的有效措施。高句丽的度量衡以4~5世纪强大国力为背景渗透到周边国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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