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 분묘 출토 청동용기의 등장과 전개
Appearance and development of bronze container unearthed in tombs during early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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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번 연구는 고려전기에 해당하는 분묘에서 출토되는 청동용기의 종류와 세부편년을 설정하고 그 변화의 의미와 고려전기 분묘의 유물 부장양상을 통해 청동용기의 사용계층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의 진행결과, 고려시대 전기 분묘에서 출토된 청동용기의 기종은 대부발, 발, 접시, 완등으로 일상생활기명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동반유물은 도기와 자기가 대부분이며 이외 청동숟가락과 장신구인 가랑비녀, 과대 등이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진안 수천리 5호에서는 기존에 완으로 분류되던 유물이 불교용구 중 하나인 경자일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청동용기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기종과 형식의 분류를 진행하였고 이후, 함께 동반되는 유물과의 비교를 통해 시기구분과 편년을 설정하였는데, 1기는 918년~11세기 초로, 청동용기는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받은 기형이 주로 출토되었고 동반유물 중 가장 많은 수량으로 확인된 도기는 4면편명이 다수이고 그 외 편구병, 주름무늬병도 확인되었다. 청동숟가락은 부여 부소산과 황해도 평산에서 출토된 숟가락과 유사성을 보였다. 2기는 11세기 초~11세기 후반으로 편년되며 청동용기는 리벳을 이용한 그릇의 제작이 두드러지고 1기에 비해 다양한 기종과 기형이 등장하게 된다. 동반되는 유물은 청자와 숟가락이 다수를 구성하는데 특히, 청자는 내저원각식 해무리굽과 광구병을 중심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 양상을 통해 1기는 고려라는 새로운 왕조가 성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그릇과 관련된 문화는 여전히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실질적’ 청동용기의 상한 연대를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에서 고려가 건국되는 10세기로 편년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11세기를 기점으로 고려왕조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청동용기의 변화는 수공업의 발전을 의미하는데 그 변화의 배경은 국내의 제도 정비, 특히 장야서 등의 설치와 큰 관련이 있으며, 또한, 금속공예가 발달하였던 요와의 교류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몇몇 사료를 통해 고려 전기에 동기가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고려전기에 나타나는 청동용기의 매납 현황과 분포양상, 제작의 연건 등을 살펴보았을 때 청동용기는 일부 계층이 향유하던 물품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fine kinds and chronology of bronze container unearthed in tombs during early Goryeo Dynasty and clarify user classes of bronze container by examining the meaning of a change and burial of remains in tombs. This study found that most bronze container unearthed in tombs during early Goryeo Dynasty are household containers such as Daebubal, Bal, plate and Wan. Accompanied remains are mostly earthenware and porcelain and include bronze spoon and Garangbinyeo which is accessories and Gwadae. Remains which were classified as Wan unearthed in No. 5 Sucheonri, Jinan are likely to be Gyeongja, one of Buddhist utensils. Meanwhile, this study classified types and forms to understand characteristics of bronze container and set term and chronology by comparing accompanied remains. First term ranges from 918 to early 11th century. When it comes to first term, bronze containers affected by unified Silla were mostly unearthed and earthenware which account for greatest part of accompanied remains was Samyeonpyeonmyeong followed by Pyeongubyeong and Jureummunibyeong. Bronze spoon unearthed in tombs during early Goryeo Dynasty are similar to that unearthed in Busosan, Buyeo and Pyeongsan, Hwanghaedo. Second term ranges from early 11th century to late 11th century. As far as bronze container is concerned, bronze container using rivet is remarkable and compared with first term, more various kinds and forms appear. Celadon and spoon account for a great part of accompanied remains and especially for celadon Naejeowongaksikhaemurigup and Gwangkubyeong dominate. When it comes to first term, even though new dynasty called Goryeo was established, container related culture is stilled under influence of unified Silla. This means that upper limit period of ‘actual’ bronze container can be estimated at the end of 9th century, the last period of unified Shilla through 10th century when Goryeo Dynasty was founded and new culture of Goryeo Dynasty began to be established from 11th century. Such change in bronze container means development in handcraft manufacturing and it is closely related to improvement in domestic system especially installation of Jangyaseo and so on and cultural exchange with Liao Dynasty that metal work developed. Based on historical materials, some studies suggest that copper container was mostly used during early Goryeo Dynasty but it seems that bronze containers were used by some classes considering burial status, distribution and production condition of bronze conta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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