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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기 숙신의 성장과 고구려

Development of Sushen from 3rd to 4th Century and Kogury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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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3세기 중반부터 曹魏 및 西晉 정권에 빈번하게 조공한 집단으로 사료상에서 나타나는 ‘肅愼’ 의 실체와 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삼국지』 동이전 挹婁와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나아가 『三國史記』 서천왕조 등에서 나타나는 3세기 후반~4세기 고구려와 숙신의 대립이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추정을 제기해 보았다. 이에 따라 3세기에 중원 정권과의 교섭하였던 숙신은 중국 삼강평원 일대의 봉림문화의 주민들로, 이들은 모피 교역 등에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한 집단으로 보았다. 이전 시기까지 통합된 정치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종족집단의 집합체였던 읍루는 3세기에 이르러 봉림문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대규모 정치체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조위와 서진 정권과 교섭함에따라 숙신이라는 이름이 이후의 사서에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주민집단의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나아가 이과정에서 고구려와 대립하게 되면서, 이것이 『삼국사기』 서천왕조에서 나타나는 고구려와 숙신간의 전쟁으로기록되었다고 해석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d the reality of ‘Sushen(肅愼),’ which appears in historical records as a group that frequently tributed to the Wei and Jin dynasties from the middle of the 3rd century AD. Also, it suggested the relationship between Sushen and Yilou(Ŭmnu) in Sanguozhi. Furthermore, this paper also interpreted the background of the conflict between Koguryŏ and Sushen from the late 3rd to 4th century AD, illustrated in the records of King Sŏch'ŏn from Samguk sagi. Accordingly, Sushen that had sent envoys to the Chinese dynasties in the 3rd century was an ethnic group that established the Fenglin Culture in the Sanjiang Plain. Based on their geopolitical location favorable to the fur trade in this period, this ethnic group developed into a large scale polity in the 3rd century, which was reflec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Fenglin Culture. Their active diplomacy with the Wei and Jin dynasties made the term “Sushen” as a representative name for the local ethnic groups in this region. In this process, Sushen inevitably collided with Koguryŏ, an event which was recorded in Samguk sagi as the war in the reign of King Sŏch'ŏ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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