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이전 고구려와 동부여의 관계에 대한 재검토
Reconsider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Koguryo and East Buyeo before the 3rd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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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광개토왕비」 등에서 나타나는 3세기 이전의 동부여의 역사적 실체로서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관련 기록의 형성 과정에 대해 검토하였다. “추모왕의 속민”과 같은 구절은 단순한 수사적인 표현으로 보기 어려우며, 『위서』 고구려전에서 전하는 막래의 부여 복속 기록을 감안한다면 3세기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고구려인들에게 인식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유리왕-대무신왕대의 대부여 전쟁 기록은 북부여에 관한 기록이었으며, 이후 동부여 관계 전승이 혼합된 결과였을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이 글에서는 동부여의 위치는 비록 간접적이지만 부여계 문화의 흔적, 그리고 고구려와 이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감안하여 연길-화룡으로 이어지는 일대가 유력하다고 추정하였다. 동부여는 태조왕 시기까지 활발하게 추진된 두만강 유역 진출로 고구려의 영향력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복속한 동부여 출신 인사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유리왕-대무신왕의 대부여 전쟁 전승에 전이시켰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곧 ‘추모왕대부터 속민’ 및 ‘막래의 부여 정벌’과 같은 기록이란 이들로부터 파생된 전승이었다고 본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reviewed the possibility of East Buyeo, which appears in the historical records such as “Stele of King Gwanggaeto, as a historical entity before the 3rd century and the process of formation of the related records. It is difficult to take the phrases like “subjects of King Ch’umo” as a simple rhetoric. Considering the record of Mangnae’s subjugation of East Buyeo in Weishu, the polity was likely recognized by the people of Koguryo far earlier then the 3rd century. On the other hand, it is supposed that the records in regard to the war between Koguryo and Buyeo during the reign of King Daemusin in Samguk sagi was originally about North Buyeo; later, these records were mixed with the legends about the fall of East Buyeo Also, this paper suggested that East Buyeo was located at the area around Yenji-Helong cities, in consideration of the evidence that, although indirectly, indicates Buyeo culture’s existence, and routes from this area to Koguryo. East Buyeo came under the influence of Koguryo in the process of its conquest of the areas around Tumen River basin until the reign of King Taejo. In this process, the ruling class of East Buyeo, who surrendered to Koguryo, attributed their origin to the legends about the war during the reign of King Daemusin. This paper then concluded the records such as “subjects of King Ch’umo” or “Mangnae’s subjugation of East Buyeo” were the result of this attrib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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