毗有王~蓋鹵王代 백제의 對中交涉 전개와 고구려
Negotiations between Baekje and China and Goguryeo during the King Biyu(毗有王) and King Gaero(蓋鹵王) peri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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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5세기 동아시아는 南北朝의 대립과 그것을 둘러싼 고구려, 백제의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진 시기였다. 백제는 아신왕 대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이 글은 이러한 백제의 입장을 중심으로 비유왕~개로왕 대에 이르는 시기 백제의 宋ㆍ北魏와의 교섭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정변을 통해 즉위한 비유왕의 즉위 초기 宋과의 교섭은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에서 시작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 소강상태에 있기는 하였으나, 고구려와의 갈등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후 비유왕 대 지속된 宋과의 교섭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었다. 북연 망명인으로 추정되는 풍야부에게 私假한 관작을 宋에 승인을 요청한 것은 北燕의 일을 통한 고구려 견제의 시도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유왕의 노력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유왕 29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 행한 田獵 은 군사 활동을 앞둔 군사 훈련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비유왕이 정변에 의해 살해되면서 이와 같은 행위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비유왕이 사망하고 개로왕이 즉위하면서 개로왕은 父王이 추진했던 정책을 이어받는다. 개로왕은 宋을 이용하여 고구려 견제를 지속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宋의 내부에서 반란이 발생함과 함께 백제가 宋과의 교섭을 위해 이용하였을 산동반도를 北魏가 차지하게 되면서 백제는 새로운 외교 전략을 세워야 했다. 그리고 그대상이 되었던 국가가 北魏였다. 개로왕은 宋과의 교섭 과정을 통해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北魏와의 교섭전략을 수립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개로왕은 北魏에 上表文을 보내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요청하기 위해 고구려와 北魏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던 北燕을 거론하며 北魏를 자극하였다. 이에 北魏는 백제의 고구려공격 요청에 대해서는 거부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백제와의 연계는 지속하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제의 입장에서 이는 北魏에 기대한 바가 아니었으며, 이후 양국 사이의 교섭은 중단된다. 백제와 北魏의 교섭은 고구려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위험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백제 사신을 대동한 北魏 사신의 내방과 고구려 경내를 통과해 백제로 귀환하게 할 것을 요구한 것은 고구려에게 백제와 北魏의 실질적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이후 고구려는 백제를 공격함으로써 이와 같은 위험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백제의 宋ㆍ北魏와의 교섭은 백제 내외부의 정세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백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백제에 비해 더욱 빈번하게 宋ㆍ北魏와 교섭하였던 고구려와의 외교전에서 결국 백제가패배한 결과가 한성 함락이었던 것이다.
Abstract
East Asia in the 5th century was a period of fierce diplomatic warfare between Goguryeo and Baekje over the conflict between the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This article examines the meaning of Baekje's negotiations with 宋 and 北魏 during the period from King Biyu(毗有王) to King Gaero(蓋鹵王). In the early stage of King Biyu's accession, he negotiated with 宋 to stabilize the royal authority. However, since the conflict with Goguryeo continued, negotiations with 宋 continued during King Biyu(毗有王) period were aimed at keeping Goguryeo in check. King Biyu(毗有王) was preparing for war with Goguryeo by conducting military training through hunting before he was killed by the coup. After taking over the throne, King Gaero(蓋鹵王) took over the policy of King Biyu(毗有王). However, as 宋 suffered a rebellion and 北魏 took over the Shandong Peninsula, King Gaero(蓋鹵王) switched the subject of negotiations to 北魏. King Gaero(蓋鹵王) established a diplomatic strategy with 北魏 based on information obtained while negotiating with 宋. King Gaero(蓋鹵王) sent a message[上表文] to 北魏 to request an attack on Goguryeo. For this purpose, 北燕, which caused conflict between Goguryeo and 北魏, was mentioned. 北魏 rejected Baekje's request to attack Goguryeo, but tried to find a way to continue its relationship with Baekje. The negotiations between Baekje and 北魏 were a serious danger to Goguryeo. Moreover, the Baekje envoys and the 北魏 envoys' visit to Goguryeo together was enough to make Goguryeo wary of the two countries. As a result, Goguryeo attacked Baekje and captured Hanseong(漢城), the capital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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