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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475년 백제ㆍ고구려의 對북위 외교전과 한성 함락

Diplomatic War of Baekje and Goguryeo Against Northern Wei from 472 to 475 and the Fall of Hanseong(漢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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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75년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킨 사건의 배경을 정리한 것이다. 이를 위해 472년에서475년 사이에 백제와 고구려가 북위를 상대로 진행한 외교전의 양상을 검토하였다. 472년 8월 백제는 북위를 상대로 청병 외교를 진행하였다. 이 외교전에 대해서 기존의 견해에서는 대체로對고구려전에서 수세에 몰린 백제가 북위에 구원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해 왔지만, 백제와 북위 사이에서 오고간 표문과 조성의 내용을 분석하면 실제로 이 시기 백제가 북위를 공격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청병 외교를진행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는 북위에 보내는 표문에서 고구려가 북위를 적대하고 있음을 부각시키는동시에 지금이 고구려를 공격할 적기임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알렸다. 또한 故事를 활용해 북위를 자극하면서 백제 자신은 고구려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신종할 의사를 전달 했는데, 이는 북위의 고구려 공격을 유도하기 위한 백제의 외교적 전술로 파악된다. 기존 연구에서는 북위가 백제의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만 파악했다. 하지만 북위가 백제에 보낸 조서 내용을 분석하면 백제의 청병 이후 북위와 고구려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발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북위는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백제가 표문을 통해 고발한 사신 파견 방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시도했다. 북위는 고구려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자 그 해명을 받아들여 백제의 청병 요청을 거절하였지만, 조서를통해 조건부로 고구려 공격에 나설 수 있음을 언명하기도 하였다. 이때 북위는 백제로 귀환하는 사신을 고구려를 경유하게 하였다. 고구려의 북위에 대한 태도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구려는 사신의 통과를 가로막았고 북위와 백제의 사신은 다시 북위로 귀환하였다. 이로써 북위가 백제에 내린 조서에서 언명한 고구려공격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셈이었지만, 이후 북위의 사신이 백제에 파견되지 못하여 양국의 연계를통한 합공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백제는 북위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위를 설득하기 위한 다른 수단으로 물길과의 연계를 시도하였고, 이는 물길의 사신을 통해 북위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물길의 사신이 도착한 것은 고구려가 한성 공격에 나선 한 달 뒤의 일이었기 때문에 백제의 시도는 결과적으로실패하였다. 고구려는 백제의 對북위 교섭 시도를 확인한 후 우선 양자의 연계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북위 사신의 백제 파견과 백제 사신의 귀환을 가로막은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와 동시에 북위와의 관계를원활히 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것은 과거 핑계를 대며 거절했던 북위와의 통혼 재개 제안이었다. 다만 고구려는 통혼 제안을 통해 북위에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전달하려 했을 뿐이고 실제로 통혼을 성사시킬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북위는 실제로 통혼을 진행하려 했고, 이를 위한 사신의 파견 과정에서 고구려와 북위 사이에 다시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북위와 백제의 연계로 인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 했고, 그것은 수도 강습을 통한 백제의 완전한 제압이었다. 475년에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한성을 기습하여 함락시킨 것은 이러한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해야 실상에 부합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여겨진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at analyzing the aspects of diplomatic war of Baekje and Goguryeo from 472 to 475 against the Northern Wei, and the background of the fall of Baekje’s capital Hanseong(漢城) by Goguryeo. A summary of analysis is as follows. In 472, Baekje conducted diplomacy requesting reinforcements to the Northern Wei. This article confirmed that this diplomacy was carried out as part of a plan to attack Goguryeo unlike existing understanding by analyzing the contents of the diplomatic documents and the activities of Baekje at the time. The Northern Wei first refused the request, but notified Baekje that they could conditionally go on a conquest of Goguryeo. However, the contents of the report of the Northern Wei were not delivered to Baekje the envoy’s return to Baekje was blocked by Goguryeo. Baekje attempted to connect with Mulgil(勿吉) as another means to persuade the Northern Wei. The envoy of Mulgil arrived in the Northern Wei and announced the connection with Baekje, but this too failed. The reason was that Goguryeo raided Hanseong and captured it at that point. After confirming that Baekje was negotiating with the Northern Wei, Goguryeo tried to block the connection between the two. Goguryeo also proposed resuming a royal marriage to improve relations with the Northern Wei. This proposal was only to convey that Goguryeo had no intention of being hostile to the Northern Wei, and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that there was a willingness to practice the royalmarriage. Northern Wei, on the other hand, tried to proceed it in practice. Goguryeo refused it by making excuses, and prepareda way to resolve the situation more fundamentally. The way was to completely suppress Baekje. This was the reason why Goguryeo raided Hanseong, the capital of Baekje in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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