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歐美全權公使 派遣에 대한 청 정부의 대응(1887~1890)
The Qing Government’s Response to Korea’s Dispatching of Envoys to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1887–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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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의 歐美 全權公使 파견 문제는 1887년부터 1890년 동안 청-조선 관계를 경색시킨 현안이었다. 이 사건은 동아시아의 전근대 국제관계 속에서의 上國-屬國 관계를 근대 서양식 국제질서에 맞추어 변용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청조의 종주권 주장과 조선의 주권 주장 사이의 충돌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었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국제적으로 확인하고자하는 청국과, 자국의 주권국가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자하는 조선의 갈등은 양국관계의 경색으로 이어졌으며, 청조가 주장하는 종주권의 범위와 조선이 주장하는 ‘自主’의 범위에 대한 양국의 엇갈린 해석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 글은 조선의 자주외교 시도에 대응하는 청측의 ‘三條’와 ‘三端’의 제정에서부터 1890년 ‘羈縻’라는 전통적인 대외정책 개념을 소환해가며 사태의 수습책을 논의하기까지에 이르는 청측의 조선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 청조가 조선의 구미사절 파견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 참여자들이 어떠한 사상적·제도적 자원을 동원하여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는지, 그리고 이들의 사고가 어떻게 청 조정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이 시기 청의 조선 정책은 어떠한 형태로 구성되고 실천되었는지를 추적해 보았다. 청측은 소위 ‘三條’와 ‘三端’의 제정 등 조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동서양의 국제질서가 교차하고 중첩되는 19세기말 동아시아의 언어적 콘텍스트(linguistic context)의 영향 속에서 동양에도 선례가 없고, 서양의 관례에도 맞지 않는 ‘三端’의 제1단과 같은 기형적인 규정을 창조하였다. 또한 조선의 저항과 자주권 인정 요구에 직면하자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羈縻”라는 전통적인 어휘를 소환해가며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었다. “羈縻”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포장된 구체적인 내용들은 세관의 장악, 차관의 통제, 그리고 현지 주재 관원을 통한 내정의 감시와 통제라는 근대 제국주의적 정책을 골자로 하는, 전통적인 사상과 근대적인 실천 방안이 뒤섞인, 절충적이고 모호한 것이었으나, 결국 조선과 청조의 기존 관계가 파국을 맞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그 구체적 내용 역시 청정부가 이미 조선에서 시행하고 있던 정책들의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상의 모습에서, 우리는 소위 ‘종주권 강화’라고 불리는 청의 일련의 조선 정책의 절충적인 성격과 그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The Joseon dynasty sending plenipotentiary ministers to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strained its relationship with the Qing dynasty for three years, from 1887 until 1890. This paper reconsiders this situation case from the perspective of conflicting interpretations about the sovereinty of Joseon dynasty, and the suzerainty of the Qing dynasty over the Joseon dynasty. In addition, this paper identifies the ideological resources that officials in charge of diplomatic affairs of Qing dynasty used to address Korea’s dispatching envoys, how their thoughts influenced the Qing dynasty’s policy decisions, and how the Qing dynasty developed and implemented its Korea-related policies during this period. This paper shows that the Qing Dynasty had no choice but to recognize the limitations of its ability to interfere and control Korea, so they had to be satisfied with maintaining the status quo on Joseon by recalling the traditional term of “reins and bridle(羈縻)” policy. In these way, this paper aims to enrich the understanding of Qing's Joseon policy from the mid-1880s to the Sino-Japanes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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