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이후 일본육군의 팽창과 徵兵 管區 변화
Expansion of Japanese Army and Change in Draft District after Russo-Japanes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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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 무장저항은 대한제국 군인을 비롯하여 민중까지 아우르는 국권회복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10년 강제 병합 이후에는 독립운동으로 구체화하여 국외 독립군기지 건설 등 국외까지 운동범위를 넓혔다. 민족의 저항 의지는 일본의 무력에 대항하면서 보다 대상과 범위가 명확해졌고, 활동 역시 구체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심에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함께 일본군이 기반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하였지만, 지배력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당시 국제 정세와 일본 국내 상황은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에는 불충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육군은 일본 내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한제국을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을 통한 일본육군의 주도권 확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일본육군이 일본 내에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러일전쟁 이후 조선 주둔 일본육군의 배치와 증설 과정을 통해 살펴보았다.
Abstract
After forced dethronement of King Gojong and the disbandment of Chosun’s Army in 1907, armed resistance developed into a movement to restore national sovereignty by both the officers and soldiers of Korean Empire and the people in general. After forced annexation of Korea into Japan in 1910, armed resistance was embodied into independence movement and expanded its scope of the movement to the foreign countries such as the establishment of independent army bases abroad. Will of Korean people to resist became clearer in its target and range with the continued conflicts against the Japanese armed forces and their activities developed more specific as well. Japanese colonial rule and a Japanese Army were at the very target of all these resistance and activities. While Japan made Korean Empire its protectorate after the Russo-Japanese War, its controlling power was limited. Especially, international situation and domestic situation in Japan at the time were insufficient to secure Japanese influence on the Korean Empire. Nonetheless, Japanese Army tried to put Korean Empire under its influence to secure hegemony in Japan. However, the Japanese Army could not secure hegemony through Korean Empire. It was in reality thanks to effect of the First World War that the Japanese Army was able to recover its influence in Japan. This study looks into this process through the deployment and expansion of Japanese Army stationed in Korea after the Russo-Japanes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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