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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형정의 상황과 개편 방향

The Penal Administration in the Late Gorye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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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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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려 말기의 형정 운영 체계에서 발생했던 혼란상을 사회 변동과 연관해서 검토했으며 이를 수습하기 위해 추진했던 개편 작업의 내용과 성격, 형정관의 전환, 역사적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형정 운영 체계의 동요는 무신집권기에 들어와서 전체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최상위 장치가 마비되면서 본격화되었다. 비정상적인 정권 교체가 거듭되면서 전임자들이 이뤄냈던 성과들이 부정되고 그 과정에서 원칙이 흔들리며 공정성이 훼손되고 일관성도 무너졌다. 그런 풍조는 원간섭기에 더욱 확산하였다. 마침내 담당 기구나 조직 체계가 변질되고 그에 따른 혼란이 초래되면서 일관된 처결이 곤란해졌다. 법 적용의 사사로움에 따른 불공정성이 증대되고 그로 인한 폐해가 확대되면서 신뢰마저 잃었다. 거기에 원률의 적용 문제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악화하였다. 말기에 이를수록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근본적인 혁신 없이는 사회의 안정과 통치체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힘들게 되었다. 공민왕 즉위 이후 반원 정치와 함께 개편 작업을 추진했으나 사회 경제의 모순이 격화되고 내부 분열이 심해지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형벌의 명확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도리어 사사로운 법 적용만 부추기면서 폐해만 가중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형정 운영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체제 개혁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갑자기 실행된 우왕의 즉위 직후부터 개편 작업에 착수하였다. 사전 준비가 철저하지 않았지만 급하게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조치로써 단행되었다. 하지만 후반기 국정의 난맥상이 심화되면서 실패했다. 재개된 것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였다. 급진 개혁파가 주도하면서 전과 다른 차원의 작업이 추진되었다. 먼저 토대 분야에 대한 선제 조치가 시도되었다. 그 바탕에서 주무 부서인 전법사를 축으로 하는 일관성을 갖춘 운영 체계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기준 형서로 대명률을 채택하였다. 또 다른 중요 법사였던 사헌부의 경우, 당시 제정된 개혁 신법을 법전 형태로 만들어서 간행하고 그것을 위반하는 자 등을 다스리는 역할을 부여했다. 말기의 개편 작업은 이전 체제의 변경과 함께 새로운 요소의 수용이라는 측면을 동시에 간직하였다. 그로 인해 외양에서는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운영 체계의 성격에서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제도의 개편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변동과 연관시키며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형정관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그 결과 조선에 들어와 대명률이 즉각 적용될 수 있었다. 더불어 표면화되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면 기미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미리 제거하지 않으면 장차 손대기 어려운 악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즉 미발의 상태이지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크게 발할 소지가 다분하므로 형을 써서 미리 방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가 일부에서 제기되었다. 형이 정치를 보좌하는 법의 범위를 넘어서서 기능하는 면모를 취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부분은 조선에 들어와서 내부 분열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종종 재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말기 형정관의 전환에 따른 형정 개편 작업의 방향은 조선에서의 모색에 직접적인 원형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나아가 장차 전개되는 길을 암시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confusions that occurred in the penal administration operating system in the late Goryeo period in relation to social change. In addition, it considers the contents and results of the reform of the penal administration system that was pursued to resolve these confusions. In the first place, chaos was in full swing in the penal administration operating system during the period of The Military Regime, when the top-level device that coordinated and controlled the whole was paralyzed. With repeated abnormal regime changes, principles were shaken, and both fairness and consistency were destroyed. This trend spread further during the Yuan Intervention Period. After King Gongmin ascended to the throne, he pursued reorganization, but as socio-economic contradictions intensified and internal divisions grew, chaos ensued. As a result, his reform work failed. It encouraged the application of private laws, which only aggravated the harm. King Wu, who ascended abruptly to the throne after King Gongmin, hastily undertook reorganization. However, as the unstable state of affairs intensified in the second half of his reign, his reform efforts failed. After the change of government following the army march back from Wihwa Island(威化島回軍), reorganization work resumed. Under the leadership of radical reformers, a different level of reform was promoted. The goal was to establish a consistent operating system. First, China's latest criminal code, the Great Ming Code(『大明律』), was adopted as the basic criminal code. Subsequently, repairing work on the equipment was also promoted. This opportunity set the task of reorganizing the role and jurisdiction of the penal administration on the right track. The reorganization work in the late Goryeo period continued to accommodate new elements along with the changes of the previous system. As a result, although there were similarities in appearance, there were in fact different aspects in the nature of the operating system. This was because it was not limited to the reform of the system, but was carried out in connection with changes. In particular, the change was remarkable in that it was an evolution in the cognition of the penal administration. In conclusion, the direction of the penal administration reorganization work following the conversion of the penal administration in the late Goryeo period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penal administration reorganization work of the next dynasty, the Joseon Dynasty. In other words, it set the direction for the path that would be followed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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