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 형정의 성격 - 운영의 체계화와 관련 의례의 정비 -
The Penal Administration in the Early Gorye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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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고려 전기 형정의 성격을 특히 죄인을 처벌하는 운영상의 체계화에 중점을 두고 그 의의를 파악하였다.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한 고려 전기에서는 각 분야의 체제 정비 작업 과정에서 반목과 균열이 아닌 상호 조화와 균형감을 지닌 정책의 추진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는 형정의 성격 형성에 작용했다.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던 태조의 훈요십조나 최승로의 상소문 등을 통해 형정의 방침이 언급되면서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성종 때 우선 법령집이나 법전 편찬의 공식 선포 대신 전체를 체계적으로 연계시키는 기본 틀로 「월령」의 수용 정책을 추진하였다. 실행에 옮겨진 것은 현종대로 각종 제도의 개편과 연관 지어 중앙과 외방에서 「월령」 등에 따라 시행되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자 근본적 해결을 위해 문종대에 들어와 율령에 대한 상세한 교정과 함께 죄의 경중을 구별해서 처리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였다. 공정성을 높이고자 처결함에 3명 이상의 합의제를 도입했다. 사형수에 대해서는 삼복주제를 실시했다. 나아가 매년 8월경 전국의 중죄인에 대한 재심사를 거행하였다. 담당 부서인 형부는 물론 중신과 국왕까지 참석하는 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형정의 정형화가 이룩되었다. 더불어 의례화의 추진을 통해 정치적 갈등이나 대립 등으로 잘못된 처결이 나오지 않도록 방지했다. 형정이 범죄자들을 형벌로 다스리는 일에 국한되지 않고 왕화의 우선이 되는 교화의 수단으로 승격시켰다. 잠시 여러 요인으로 동요되었지만, 예종의 즉위를 계기로 관대함과 공정함 그리고 시의적절한 때라는 면모를 지니도록 형정에 대한 조치가 다각도로 취해졌다. 특히 동왕 8년 예의상정소가 설치되면서 관련 의례의 제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관련 예의 제정을 통해 형정의 권위를 내외에서 인정받도록 했다. 의종대 초반까지는 기본적인 것은 유지되었으나 후반부에 들어와 국정 운영의 난맥상이 벌어지면서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편차가 있지만 기본 골격의 일부가 그런대로 유지되었는데 그만큼 생명력이 있었음을 의미했다. 이는 단지 형정 그 자체의 정비만이 아니라 관련 의례의 제정을 통해 상호 조화와 균형을 꾀한 데서 이뤄낸 성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studies penal administration in the Early Goryeo Period. In particular, this study analyz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change in mechanism, organization, and method of criminal punishment by each time period. First, during King Seongjong’s rule(成宗, 在位981∼997), the central government began systematizing sentences. As a basic framework for creating consistency, the central government promoted a policy to accept the Wolryong (月令, Proceedings of Government in the Different Months). However, it was during King Hyeonjong’s rule(顯宗, 在位1009∼1031) that this policy was actually implemented. It was only during this period that punishment was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Wolryong in the central and local areas. However, problems were discovered during the policy’s execution, and measures were taken to fundamentally solve such problems during King Munjong’s rule(文宗, 在位1046∼1083). Along with the correction of errors in the policy, the central government established a new system to differentiate the severity of offences and punish criminals accordingly. Afterward, the foundations of penal administration were temporarily shaken. However, after King Yejong(睿宗, 在位1105∼1122) ascended to the throne, a variety of measures were implemented to check punishment and ensure generosity and fairness. Through the enactment of such policies, the central government erected the authority of penal administration and secured its recognition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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