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防共)’과 ‘반공(反共)’의 변증법 : 해방 후 10년 신문지면에 나타난 기호의 변용과 그 의미
Anticommunism Defense and Anti-commu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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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해방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공존하였던 ‘방공’과 ‘반공’이라는 기호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지배적 위상을 나누어가지며 상호관계를 맺는 과정에 대해 논의해보았다. ‘방공’이라는 기호는 지금은 그 존재가 망각되거나, 혹은 ‘반공’이라는 기호와 동의어 정도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지만, 두 기호가 상호적 관계를 맺은 과정을 살피면 현재에도 한국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반공주의가 해방 이후 형성되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의 한 일면을 파악하는 데 일정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방공’은 해방 이전부터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기호로, 1930년대 중반부터 일본제국이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확보하고, 다른 열강들에게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외교/정치적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대두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공’이라는 기호가 가지고 있는 (안티)이데올로기적 성격과는 구별되는 면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공산주의를 적대하는 것이 국가의 실리를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선택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정치사상으로서의 공산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와의 관계 설정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근대국가라면 예외 없이 고려해야 할 변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비공산권 국가들은 그러한 공산주의 국가를 대하는 방식에 실리적으로 접근했다고 할 수 있는데, ‘방공’은 ‘반공’에 비해 그러한 면을 더욱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기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 ‘방공’이라는 기호가 신문지상 전면에 나서는 것은 그러한 대동아공영권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아시아 패권주의의 기억/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대동아공영권이 ‘심상지리’를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하여 작동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해방 이후의 ‘방공’은 그러한 메커니즘을 그대로 계승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반성적 시각이 필요하다. ‘방공’과 ‘반공’은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발발 초기만 하더라도 분명하게 그 의미와 개념의 경계가 구별되는 기호들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에 와서는 ‘방공’과 ‘반공’ 사이의 구별이 모호해진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이 반공주의를 적극적으로 지배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인 시점과 그 시기를 같이한다. 강력한 반공주의국가 중 하나로 냉전 체제에 편입되면서, ‘반공’, 혹은 ‘방공’이 국가의 외교적 실리를 위해 상대적으로 고려되었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망각되면서 ‘반공주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한다. 그 결과로 심상지리를 바탕으로 한 ‘방공’이라는 기호가 가지고 있던 독자적 의미 영역이 망각되었고, 그것은 ‘반공 방공’처럼 병렬적으로, 그리고 관습적으로 사용되었던 기호였던 것처럼 기억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반공’이 단독정부에 의해 전유되어 대한민국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되고, 마치 해방과 한국전쟁을 가로지르고 있는 역사적 질곡의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것처럼 기억되는 이른바 반공주의적 ‘공유기억’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discus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anticommunism defense (bang-gong) and anti-communism (ban-gong) in the late 1940’s and early 1950’s. Although anticommunism defense had become one of the forgotten words in these days, we can find a clue to grasp the process of the settlement of the anti-communism in the republic of Korea after the liberation by studying the relationship. Anticommunism defense’ had been used long before the liberation. The Japanese empire brought up these words as prospects of the strategy for procure the position of the Asian empire from the European and North American countries. As a result, this code has a consideration of geopolitics more than ideological aspect. And the frequent uses of the code have a meaning that Korean ideologues could not free themselves from the idea of the great Asia co-prosperity sphere even after the liberation. After the Korean war, as anti-communism had become the ruling ideology in the republic of Korea, the line between anticommunism defense and anti-communism became vivid, because ideological aspect of anti-communism prohibited citizens from considering the reason why they accept the idea of anti-communism itself. This fact erased the need of ‘anticommunism defense’ in Korea, and as a result it had become one of the forgotten code in the history of moder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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