入關 前 淸朝의 瀋陽館 統制樣相
清政府对沈阳馆的统制样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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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丙子胡亂에서 패배한 朝鮮은 ‘城下之盟’의 약속에 따라서 昭顯世子와 鳳林大君 등을 당시 淸의 首都였던 瀋陽으로 보내야 했다. 丁丑年(1637년)부터 昭顯世子가 귀국했던 乙酉年(1645년)까지 8년의 시간동안 두 나라의 관계는 人質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었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이 전개되었던 시기에, 청정부가 조선의 世子와 그 일행을 어떻게 대우하고, 어떤 인물들이 조선의 世子館所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당시 淸朝의 조선에 대한 정책의 基調와 조선에 대한 통제 양상을 검토할 수 있었다. 瀋陽館에 대한 청 정부의 기본적인 방침은 청의 내부 인사들, 특히 홍타이지(皇太極)와 한위(汗位)경쟁을 했거나 淸朝 안에서 높은 위상을 확보한 이들과 개인적인 교류를 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이러한 방침은 이 심양관을 통해서 청조 내부의 情報가 조선을 거쳐 明으로까지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고, 동시에 청조 안의 유력한 인사들이 조선과 독자적으로 교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제를 하면서도 청의 位相과 관련된 행사에는 참석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명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청의 위상을 再考하도록 한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양관을 오가면서 조선관련 정책을 담당한 이들은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戶部를 중심으로 한 이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청 황제의 측근에서 여러 방면의 정책입안을 담당하였던 이른바 ‘內三院’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이들 두 그룹은 당시 홍타이지의 권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구성원들로 조선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이었던 홍타이지의 정책 노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이들이었다. 이러한 인물들을 매개로 청조정은 이렇게 심양관을 규제하고 관리하면서 많은 요구를 하였고, 자신들이 뜻대로 일이 처리되지 않을 때는 朝鮮世子에게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는 청과 조선이 세자에 대해서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청조는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의 世子를 왕권의 공유자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심양에서 조선관련 사무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었다. 당시 청조가 보여준 조선정책의 基調가 강경일변도였다는 점을 청 태종 홍타이지의 개인적인 성향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대두와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누르하치(奴爾哈赤) 死後에 다이산(代善)과 홍타이지 중에서 홍타이지가 汗으로 추대되었던 이유는 두 사람의 성향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심각한 기근으로 경제적인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도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의 다이산보다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홍타이지가 한으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하였고, 당시 군대를 통솔하는 능력도 홍타이지가 우월하였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이렇게 즉위한 홍타이지가 군주를 중심으로 권력구도를 재편하고 관제개혁을 추진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을 기반으로 해서 홍타이지는 청 조정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다이산과 도르곤(多爾袞)과 같은 버일러(貝勒)들을 견제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조선과의 관계를 이끌 수 있었다. 이러한 틀에서 본다면, 홍타이지 사후 변화하는 청조의 심양관에 대한 태도는 明淸간의 역학관계 외에 권력행사자의 성향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丙子胡乱中战败的朝鲜根据城下之盟将昭显世子和凤林大君等送到了当时清朝的首都沈阳。从丁丑年(1637)到昭显世子回国的乙酉年(1645)这8年的时间通过人质形成了两国的交往关系。在这种特殊的情况和时期,清政府是如何对待朝鲜世子及其一行的?是什么人来负责朝鲜世子馆的联系?本文便对此进行相关的分析研究,并且希望通过这些来分析当时清政府对朝鲜的基本政策和统制方式。清政府对沈阳馆的基本方针是严格禁止清朝内部人士特别是与皇太极竞争汗位的或者高层人员与其发生个人的交流。这一方针主要是为了防止清朝内部的信息通过沈阳馆传到明朝,同时防止清朝内部大员与朝鲜出现单一的交往。尽管如此,仍然让其参加清朝有关的大型活动。这主要是为了对朝鲜施压隐形压力让其考虑放弃于明朝的关系。 在这样的情况下,负责朝鲜相关政策的人员便分成了两个大集团。一个是以户部为中心,另一个是清朝皇帝身边负责重大问题决策的所谓内三院(内秘书院、内国史院、内弘文院)人员。这两个集团是皇太极权利的基础和政治势力,是皇太极对朝鲜强硬路线的忠实执行者。清政府以这些人员为媒介对沈阳馆进行限制和管理并提出要求。在他们本身难以处理或者对朝鲜世子的期望不同的时候也会吐露不满。在这样的矛盾下,清和朝鲜对世子的认识也就不尽相同。换句话说,清朝根据经验想当然的认为世子是朝鲜王权的共有者,可以在沈阳通过世子处理与朝鲜相关的事务。当时清朝对朝鲜实行强硬一边倒的基本政策。这一政策可以与清太宗皇太极的个人性格和新政治势力的出现相关。在努尔哈赤死后皇太极和代善中皇太极被拥戴为汗的原因也在于此。在当时经济状况持续恶化,逃亡者日渐增多的情况下,保守的代善自然比不了积极进取的皇太极。同时皇太极对军队的统帅能力也是非常有优秀的。在这种形势下继位的皇太极以君主为中心改革官吏制度并且成功的形成了新的政治势力。以次为基础皇太极能够有效的牵制清朝内部的代善和多尔衮等贝勒,并且根据自己的意图确定与朝鲜的关系。在这种框架下我们可以看出皇太极死后清朝对沈阳馆的态度不仅与明清之间的力学关系相关,而且与权利的行使者也有着紧密的关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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