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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聰年間 홍타이지의 漢人 官員에 대한 회유와 통제

Hongtaiji’s Placation and Control of Chinese Officials in Early Part of Hongtaiji’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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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天聰年間 後金에 투항한 한인 관원에 대한 홍타이지의 이중적 태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는 후금의 汗으로 즉위한 이후 누르하치에 의해 외면받았던 漢人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였다. 과거 明에서의 지위와 투항한 이후의 공적을 기준으로 관직을 수여하였으며, 예기치 않은 친지의 죽음에 대해 보상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한인 관원과 후금 지배층간 혼인을 통한 滿・漢의 결합도 시도하였다. 이후 孔有德 등이 투항하자 그들만의 별도 조직도 인정해주었으며, 한인 관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기존 八旗의 모습을 본떠 체계적인 관리를 시도하였다. 홍타이지는 한인 관원에 대한 통제도 잊지 않았다. 후금의 한인 관원이 증가하면서 그들은 과거 明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변화의 방책이 담긴 上言[上疏]를 올렸다. 이에 대해 홍타이지는 국정의 폐단을 개혁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반복적으로 언급한 明에 대한 무모한 군사행동이나 女眞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비난은 힐책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한인 관원들이 단체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요구하자 그들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기고 국가를 위해 더욱 노력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즉, 홍타이지는 북방민족 군주로서 강렬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한인 관원을 상대하였다. 만약 한인 관원이 二等民族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잊어버리고 정해진 한계선을 넘으면 홍타이지의 엄중한 경고를 맞이하였다. 이와 같은 모습은 북방민족 군주가 유능한 한인 신하의 보좌를 받아 내부의 개혁을 단행하고 문명의 길로 들어선다는 기존 서사가 최소한 홍타이지 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Hongtaiji’s ambivalence towards Han officials who had surrendered to the Later Jin. Having succeeded Khan to the throne, Hongtaiji actively appointed Han Chinese, recruited public officers based on these men’s Ming Dynasty statuses, and considering the sum of reparations they paid. He also tried to unify the Manchu-Han, orchestrating marriages between Han officials and the Later Jin ruling classes. He would later manage the increasing number of Han officials systemically and based on the Eight Banners, reforming the government while strengthening his authority. However, he disregarded Han officials’ pleas to engage in reckless military operations against the Ming Dynasty and their criticism of the Jurchen people’s traditions and customs. In essence, Hongtaiji became a symbolic ruler of the northern race and dealt with Han officials with a strong sense of identity. While past narratives focus on Han officials’ roles in the carrying out of internal reforms, at least under Hongtaiji’s reign these explanation is not su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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