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후반 갑자구락부의 제한적 참정권청원운동과 식민지배정책의 동향
The Restricted Suffrage Petition Movement of Gabjaclub(甲子俱樂部) and Colonialism Policy in the Mid-lat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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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재조일본인인 공직자들과 조선인 공직자들의 합작단체로 조직된 갑자구락부는 제한적 참정권청원운동을 통해 1920년대 후반 친일정치운동을 주도한 단체였다. 조선재주민 대표를 내지정치에 참여시켜 재조일본인 주도의 조선통치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 이들의 구상이었다. 이러한 갑자구락부의 구상은 국민협회 쇠퇴 이후에도 존재하던 체제협력세력의 정치적 권리 확대욕구를 흡수하였고, 정치적 권리에 대한 체제협력세력의 기대는 갑자구락부의 성장을 가속화하였다. 그러나 갑자구락부의 활동은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갑자구락부의 기대와 달리 정당내각은 내지연장주의를 식민통치일원화로 해석하고, 조선의 식민지적 위상을 분명히 하는 척식성관제신설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구락부와 참정권청원운동세력은 체제협력세력이면서도 척식성관제신설에 맹렬히 반대했지만, 식민통치일원화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1930년대 초 대륙침략정책과도 연계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척식성 관제신설 반대운동 이후 갑자구락부는 정치적 동력을 상실하였고, 1930년대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는 단체로 쇠퇴하였다. 요컨대 갑자구락부의 활동과정은 ‘문화통치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배체제가 표방한 논리를 현실의 문제로 전환하여 제기함으로써 현실의 지배체제와 충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모순적 상황은 내지연장주의가 ’완전한 동화‘의 실현이라는 식민통치의 근원적 목표에서 연원하는 논리라는 점에서 식민통치 이념의 본질적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Gabjaclub(甲子俱樂部) was a group that led the pro-Japanese political movement in the late 1920s through a ‘limited suffrage petition movement’. Their idea was for the residents of Choseon to participate in Japanese political system and lead the Choseon governance system. The idea of Gabjaclub(甲子俱樂部) absorbed the political needs of the forces of cooperation in the regime, and as a result, Gabjaclub(甲子俱樂部) became the most influential pro-Japanese organization in the late 1920s. But the activities of Gabjaclub(甲子俱樂部) ran into a limit. This is because the Japanese political party cabinet promoted the unification of colonial rule. Gabjaclub(甲子俱樂部) and the suffrage petition activists opposed fiercely, but it was an unstoppable reality. This was because it was a problem related to the continental aggression policy in the early 1930s. Eventually, after the movement against the establishment of Ministry of Colonial Affairs(拓殖省), the group suddenly lost its political power, and after the 1930s, it declined as a nominal organization. An organization based on the colonial ideology collided with the colonial system and declined. It can be said that it showed the irony of the colonial rule of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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