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5세기 중후반 신라 소지마립간대의 대고구려 관계

Relation between Goguryeo and Silla during the Sojimaripgan period, in the mid-late 5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2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신라는 눌지마립간 34년(540)에 실직에서 고구려 변장을 살해한 사건 이후부터 나제동맹을 통하여 고구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소지마립간대의 대고구려 관계는 삼국의 역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주제이므로, 기왕의 연구 성과와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이 시기 신라의 대고구려 관계를 재검토하였다. 우선 소지마립간 초반 니하 일대의 전투 기사를 분석하였다. 481년에 소지마립간의 비열성(안변) 순행에 자극을 받은 고구려는 니하(남한강 상류)를 타고 국원-제천-단양-영월-정선을 통하여 삼척과 울진 방향으로 동해안으로 넘어가서, 미질부(포항 흥해)까지 남하하였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의 지원을 받아 고구려군을 몰아내고 니하에서 격퇴하였다. 신라 소지마립간은 483년과 488년 두 차례에 걸쳐 일선 지역을 순행하였고, 485년에 구벌성(의성)을 쌓고, 486년에는 삼년성(보은 삼년산성)과 굴산성(옥천 이성산성)을 개축하였다. 488년에는 도나성(상주), 490년에는 비라성(미상)을 축조하였다. 한편 484년에는 고구려가 모산성(문경 고모산성)을 공격하자 신라는 이를 막아내었지만, 489년에는 호산성(미상)을 고구려에게 상실하였다. 그렇지만 신라는 494년에 오히려 살수(괴산)에서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우산성 전투와 날이군 순행의 의미를 통하여 소백산맥 이북 지역에서의 신라의 영역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니하 일대에 대한 영역화를 강화하자 496년에 고구려는 우산성(영월 정양산성)을 공격하였고, 이듬해에 신라는 우산성을 빼앗기게 된다. 그렇지만 500년 소지마립간이 날이군(영주)을 순행한 것과 5세기 후반 단양 지역의 신라의 진출이 확인되는 고고학적 정황을 통하여 얼마 후 신라는 우산성을 탈환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소지마립간기의 대고구려 관계는 6세기 중반에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므로, 삼국의 대외관계뿐만 아니라 신라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Abstract

Aggressive Goguryeo Relations in Silla-Baekje Alliance at Sojimaripgan Period is an important research topic for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of power between the Three Kingdoms Period at that time. In this paper, We review the various nominations appearing in the literature based on the research results of the past, and reviewed the archaeological achievements that have accumulated in recent years, and reviewed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Goguryeo in this period. First, I analyzed the article of battle at the Niha area during the early Sojimaripgan period. Goguryeo was stimulated by Silla's advancement to Anbyeon in 481, passing through Niha(Upstream of the Namhangang River), going to Samcheok and Uljin to the east coast and advanced south to Mijilbu. With the support of Paekche, Silla pursued Goguryeo to Niha and repulsed them. Next, I looked at the article that noted that the Fortress at Sojimaripgan and battle between Silla-Goguryeo at the Sobacksan mountain range. In 483 and 488, Sojimaripgan visited the area on Ilsun. and Silla built many fortress. In 486 to 490. On the other hand, in 484, Goguryeo attacked Mosanseong (Gomosanseong Fortress), but Silla blocked it. In 489, Silla was taken to Hosanseong by Goguryeo. However, in 494, Silla attacked Goguryeo in the Salsu(Goesan). Finally, through the Usanseong(Jungyangsanseong Fortress) battle, we examined the territorialization process of Silla in the north Sobaeksan mountain range area. When Silla strengthened its control over the territory of Niha, in 496, Goguryo attacked Usanseonge. In the following year, Silla was taken to the Usanaseong by Goguryo. However, Silla recaptured the Usanseong. Thu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illa-Goguryeo in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Silla laid the foundations for entering the Hangang River basin. This is important not only in the external relations of the Three Kingdoms but also in the position of Silla.

참고문헌 (45)

  1. 金賢淑, "고구려의 영역 지배방식 연구" (2005), 모시는사람들
  2. 리지린, "고구려사연구" (1976), 사회과학출판사
  3. 서영일, "신라 육상 교통로 연구" (1999), 학연문화사
  4. 손영종, "고구려사 1" (1990),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5. 梁起錫, "新羅 西原小京 硏究" (2001), 서경
  6. 李丙燾, "國譯 三國史記" (1977), 乙酉文化社
  7. 이부오, "신라 군‧성(촌)제의 기원과 소국집단" (2003), 서경
  8. 장창은,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2008), 신서원
  9. 장창은, "고구려 남방 진출사" (2014), 경인문화사
  10. 홍영호, "新羅의 何瑟羅 經營 硏究" (2006), 景仁文化社
  11. 강민식, "5세기 후반 삼국의 전투와 대치선", 군사, (87), pp.213~240 (2013),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DOI]
  12. 강종훈, "한국 고대 사국의 국경선" (2008), 서경문화사
  13. 김영관, "古代 淸州地域의 歷史的 動向", 백산학보, (82), pp.31~79 (2008), 백산학회
  14. 金貞培, "中原高句麗碑의 몇 가지 問題點", 史學志, 13 (1979), 檀國史學會
  15. 김정인, "高句麗와 中原文化" (2014), 주류성
  16. 김진한, "6世紀 前半 高句麗의 政局動向과 對外關係", 군사, (64), pp.103~132 (2007),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DOI]
  17. 김진형, "영월 정양산성 발굴성과 및 의의", 영월 정양산성 보존 및 활용방안 학술 심포지엄 (2014), 江原考古文化硏究院
  18. 김현숙, "4~6세기경 소백산맥 이동지역의 영역 향방", 한국고대사연구, 26, pp.75~114 (2002), 한국고대사학회
  19. 閔德植, "鎭川 大母山城의 分析的 硏究", 韓國史硏究, 29 (1980), 韓國史學會
  20. 朴京哲, "中原文化圈의 歷史的 展開 -그 地政學的·戰略的 位相 變化를 中心으로-", 先史와 古代, 15 (2000), 韓國古代學會
  21. 박성현, "6세기 초 고구려 ` 신라의 화약과 정계 -「중원 고구려비」와 양국 경계의 재검토 -", 역사와 현실, (76), pp.203~237 (2010), 한국역사연구회
  22. 박성현, "특집논문:5~6세기 고구려·신라의 경계와 그 양상", 역사와 현실, (82), pp.57~96 (2011), 한국역사연구회
  23. 서영일, "5~6세기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 경영", 博物館紀要, 20 (2005), 檀國大學校 石宙善紀念博物館
  24. 서영일, "신라시대 청송 지역의 역사와 문화", 신라사학보, (29), pp.1~54 (2013), 신라사학회
  25. 梁起錫, "南漢江 流域의 古代史 硏究", 江原文化史硏究, 4 (1999), 江原鄕土文化硏究會
  26. 양병모, "단양 온달산성의 축조시기와 운영주체에 대한 재고찰", 한국고대사탐구, (29), pp.221~260 (2018),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27. 윤성호, "신라의 道薩城·錦峴城 전투와 國原 진출", 한국고대사연구, (87), pp.221~256 (2017), 한국고대사학회[DOI]
  28. 윤성호, "삼국유사의 세계" (2018), 세창출판사
  29. 李康來, "『三國史記』에 보이는 靺鞨의 軍事活動", 嶺土問題硏究, 2 (1985), 고려대학교 영토문제연구소
  30. 李道學, "新羅의 北進經略에 관한 新考察", 慶州史學, 6 (1987), 慶州史學會
  31. 張彰恩, "中原高句麗碑의 연구동향과 주요 쟁점", 歷史學報, 189 (2006), 歷史學會
  32. 장창은, "서울 2천년사 6-삼국의 각축과 한강" (2015), 서울역사편찬원
  33. 전덕재, "신라의 北進과 서북 경계의 변화", 한국사연구, (173), pp.85~126 (2016), 한국사연구회
  34. 鄭永鎬, "高句麗의 錦江流域進出에 대한 小考", 山耘史學, 3 (1989), 汕耘學術文化財團
  35. 鄭雲龍, "5世紀 高句麗 勢力圈의 南下", 史叢, 35 (1989), 高大史學會
  36. 井上秀雄, "古代東アジアの文化交流" (1993), 溪水社
  37. 篠原啓方, "中原高句麗碑의 釋讀과 내용의 의의", 史叢, 51 (2000), 高大史學會
  38. 酒井改藏, "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1970), 朝鮮史學會
  39. 崔寬鎬, "5세기 후반 신라 북진거점 석축산성의 구조와 성격", 碩士, pp.2016
  40. 최병현, "중부지방 백제 한성기 축조·신라 재사용 석실분과 고구려·신라 연속조영 고분군", 고고학, 14(2), pp.73~119 (2015), 중부고고학회
  41. 최종택, "湖西地域 高句麗遺蹟의 調査現況과 歷史的 性格", 백제연구, (63), pp.1~38 (2016), 백제연구소
  42. 최준경, "고구려사연구론문집(2)" (2005), 사회과학출판사
  43. 홍승우, "4∼6세기 영남 동해안지역의 문화와 사회" (2009), 동북아역사재단
  44. 홍영호, "『三國史記』 所載 泥河의 위치 비정", 한국사연구, (150), pp.43~83 (2010), 한국사연구회
  45. 홍영호, "산성과 고분으로 본 신라의 하슬라 진출과 경영", 신라사학보, (33), pp.31~83 (2015), 신라사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