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제동맹기’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 변천
The Border transition Between Silla and Baekje in the Periods of ‘Silla-Baekje Al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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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467~468년경에 소백산맥을 넘어 보은지역에 진출한 후 三年山城[충북 보은군 보은읍]을 축조하였다. 474년에는 一牟城[청원군 문의면]과 坐羅城[영동군 황간면]→廣石城[영동군]→沙尸城[옥천군 이원면]→仇禮城[옥천군 옥천읍]을 축조함으로써 추풍령로와 화령로를 개척했다. 그 결과 보은 서쪽 방면에서의 나․제 간 국경선은 문의지역을 신라가 차지한 상태에서 그 서북쪽 경계에서 형성되었다. 보은 서남쪽 방면에서는 신라가 옥천군을 차지한 상태에서 옥천군을 경계로 대치했다. 484년에 고구려가 신라 북쪽 변경에 쳐들어왔을 때 나․제동맹군이 母山城[충북 진천군 진천읍] 아래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신라의 진천지역 진출이 6세기 중반 이후에야 분명하게 드러나는 고고학적 정황을 고려할 때, 484년 모산성 전투를 근거로 신라가 이 지역을 영역지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신라가 484년에 모산성에까지 이르렀던 것은 고구려의 침략에 따른 방어 차원에서의 일시적 진출로 해석된다. 490년에 백제는 沙峴城[충북 괴산군 사리면]과 耳山城[충북 증평군 추성산성?]을 쌓았다. 곧 백제가 490년 무렵까지 청주-청원-진천-증평지역의 영역지배를 유지했다. 증평과 괴산의 중간에 있는 사현성이 백제 동북쪽 경계로서 고구려와의 국경선에 가까웠다. 괴산 이남의 청천면과 청원 미원면 일대의 영유권 향방은 유동적이었다. 494년에 고구려는 薩水原[충북 청원군 청천면 또는 미원면]까지 진출해 신라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때 신라는 犬牙城[청원 낭성산성?]으로 대피했다. 이것은 신라가 494년 무렵 청천․미원면까지 진출했음을 의미한다. 신라와 백제는 기존의 국경선을 유지하면서 청원군 미원면은 신라가, 낭성면은 백제가 차지한 상태로 국경선을 형성했다. 498년에 동성왕은 沙井城[대전시 중구 사정동]을 쌓았다. 동성왕대 후반 신라와의 우호관계가 이완되면서 대신라 방어성을 구축하려는 성격이 짙었다. 474년 이후 498년까지도 신라가 옥천지역을 차지하고, 그 서쪽인 대전지역을 백제가 차지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동성왕은 501년에는 탄현[충남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에 목책을 설치해 대전 남쪽의 금산 방면에서 쳐들어오는 대신라 방어체계를 마련했다. 결국 5세기 후반~6세기 초반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은 옥천 방면에서 남서쪽으로 연장되었다. 곧 신라가 금산지역까지 진출하면서 금산 서북쪽 방면에서 국경선이 형성되었다. 백제가 526년에 熊津城을 수리하고 沙井柵을 세운 것은 수도 동쪽의 외곽 방어시설을 재정비하는 차원이었다. 6세기 이후 신라와 백제의 우호관계가 느슨해지면서 소백산맥 서북방 방면에서 나․제동맹군의 활동은 없었다. 그에 따라 이 지역에서의 나․제 간 국경선은 기존 것이 유지되었다. 550년 백제는 고구려의 道薩城[진천군 일대]을 빼앗았고, 고구려는 백제의 金峴城[세종시 전의면․전동면]을 함락시켰다. 550년 무렵에 도살성이 고구려의 영유 하에 있었다는 것은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진천지역이 그 이전에 고구려에 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고구려가 금현성까지 진출한 것을 볼 때 미호천 유역의 영유권은 유동적이었다. 결국 신라가 두 성을 모두 차지한 것은 6세기 전반까지 대전과 청주 동쪽 방면에 머물러 있던 신라가 청주 서북쪽의 미호천 유역까지 진출했음을 의미한다.
Abstract
In 467~468 years, Silla advanced to the Boeun area through Sobaek Mountains. Silla built a Samnyeon Mountain Fortress that place. In 474 years, Silla constructed Ilmo Fortress[Chungwon-gun Munui-myeon in Chungcheongbuk-do] ․Jwara Fortress[Yeongdong-gun Hwanggan-myeon in Chungcheongbuk-do]․Kwangseok Fortress[Yeongdong-gun]․Sasi Fortress[Okcheon-gun Iwon-myeon] ․Kurye Fortress[Okcheon-gun Okcheon-eup]. As a result, Silla and Baekje face to face the Border in the fields southwest of Boeun area. In 484 years, Allied Army of Silla-Baekje defeated Goguryeo military under the Mosanseong Fortress[Jincheon-gun Jincheon-eup in Chungcheongbuk-do]. In 490 years, Baekje built a Sahyunseong Fortress[Goesan-gun Sari-myeon in Chungcheongbuk-do] and Isanseong Fortress[Jeungpyeong-gun in Chungcheongbuk-do]. Namely, Baekje occupied the Cheongju-Cheongwon-Jincheon-Jeungpyeong Region until 490 years. In 494 years, Silla advanced to the Cheongcheon-myeon and Miwon-myeon. Silla and Baekje maintained the Border this Area. In 494 years, King Dongseong built a Sajungseong Fortress[Sajeong-dong in Daejeon]. In 474~498 years Silla ocupied the Okcheon, and Baekje ocupied the Daejeon Area. Also In 501 years, King Dongseong built a Wooden fence on the Tanhyun[Geumsan-gun Jinsan-myeon Gyochon-ri in Chungcheongnam-do]. Finally The Border between Silla and Baekje maintained southwest of Geumsan area in the late 5th century~early 6th century. In 550, Silla occupied Dosalseong Fortress[Jincheon-gun] and Geumhyunseong Fortress[Jeonui-myeon․Jeondong-myeon in Sejong-si] after it was occupied by Goguryeo and Baekje. Hereby, Silla advanced to the Mihocheon Basin which located in southwest of Cheongju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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