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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府 모금대장 張寒星 사건과 中・日關係

國民府募款隊長張寒星事件與中日關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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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논문은 1929년 말부터 1931년 초 사이 조선독립지사 張寒星의 체포및 인도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했던 중・일 간의 분쟁에 관한 연구이다. 장한성에 대한 체포는 일본 영사관경찰이 주도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중・일쌍방의 공동 체포로 귀결되었다. 체포 과정에서 일본 영사관경찰은 단독적인 체포 활동을 진행하면서도, 중국 측과 긴밀히 협조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는데, 이는 당시 악화된 중・일 관계를 호전시키고 영사관경찰기구의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타협적 외교 방침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장한성을 체포한 뒤, 중국 측은 그가 중국에 귀화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길림성 공안국에 구금하였다. 그러나 일본 측은 그가 ‘일본 신민’으로서영사관경찰을 죽인 살해범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중국 측과 1년 동안이나되는 교섭을 진행하며 그의 인도를 요구하였다. 교섭 과정에서 쌍방은 장한성의 신원을 놓고서 공동 지문검증을 실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그 결과 피구금자가 장한성임이 확인되었지만 중국 측은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채 장한성을 길림법원으로 이송하였고, 그 후 그가 옥사할 때까지도 끝내 일본 측에 인도하지 않았다. 이는 장한성의 인도 문제가 영사관경찰기구 철수 및 조선인 관할권 귀속 등의 사안과 결부되어 중국의 주권 문제와 직결된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Abstract

本文主要是關於從1929年末到1931年初之間圍繞著朝鮮獨立運動鬥士張寒星被逮捕之過程及引渡問題而發生的中日糾紛的研究。 對張寒星的逮捕行動主要由日本領事館警察完成, 但就結果來看中日雙方共同進行。 在逮捕過程, 日本領事館警察多半進行了單獨的逮捕活動, 偶爾也向中方通報並要求雙方警察的共同逮捕。這一點起因於日本的妥協性外交方針, 主要爲了緩和已被惡化的中日關系並維持領事館警察機構的現狀而采取。 逮捕張寒星之後以他加入中國籍爲由, 暫由中方監禁, 但日方以他是作爲“日本臣民”而殺害領事館警察之殺人犯理由, 爲引渡到領事館與中方進行了長達一年的執拗交涉。 在交涉中被拘捕人到底是張寒星還是歸化入籍者金彥三成爲焦點, 爭執甚至激化到雙方爲探明被拘捕人的身份共同進行指紋檢驗的程度。 結果查實被拘捕人分明是張寒星, 但中方不但不承認查實結果,找出其他理由把犯人移交到吉林法院, 直到死亡爲止終究沒有引渡給日方。 這是因爲張寒星的引渡直接關系到日本領事館警察機構的撤回問題, 對朝鮮人管轄權的歸屬問題又直接關系到中國的核心利益——領土主權問題。

참고문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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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李洪錫, "日本駐中國東北地區的領事館警察機構硏究" (2008), 延邊大學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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