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1911年 朝鮮에서의 中國人 死亡 事件과 中日關係

A Chinese Death in Joseon and Sino-Japanese Relationship in 1911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1911년 조선 땅에서 청국인 사망 사건이 발생하였다. 평안남도의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이었다. 그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일본 헌병과 청국인 사이에 총격이 발생하였고, 청국인 한 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일본과 청국 간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 사망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청국 측의 조사와 일본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단순한 일본 헌병과 청국인 강도 사이의 총격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진 사건으로 전개되고 흥미로운 사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먼저 청국측은 관련 중국인들이 결코 도적이나 강도가 아니었으며, 일본 헌병의 조치가 불법의 여지가 있었다고 했다. 헌병들을 처벌하고 적절한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일본측 역시 이 사건에 직접 간접 관련된 현지 조선인을 대상으로 상세한 내막을 조사하고 탐문하여 청국측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청국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유감이지만, 일본 헌병과 조선인 헌병보조원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측이 우세였다. 일본이 조선의 내정과 지방 행정 및 경찰 치안에 이미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을 활용한 것이었다. 일본 헌병과 청국인의 충돌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1911년 역사적 전환기의 조선 향촌 사회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Abstract

A burglary happened in a small village of Pyeongan South Province in Joseon in 1911. The suspect was a Chinese. While running away to escape from the arrest, he was shot to death by the Japanese military police. This death case brought about a considerable international tension and conflict between Ch'ing China and Japan. At first this case was just being treated as a simple burglary and death case. However, as it was investigated both by the Chinese authority and by the Japanese, it came to be recognized not as a simple shooting between a Chinese robber and the Japanese military police, but as a suspicious case with many questions. The Chinese contended that as the dead Chinese was not a robber or a burglar, the Japanese military policeman's action including shooting could be illegal. They demanded the Japanese to punish the policemen and to pay a proper reparation for their illegal actions and the Chinese death. Whereas, the Japanese also implemented a comprehensive investigation against the directly and indirectly relevant Koreans of the place in detail to repudiate the Chinese assertions. On the ground of their investigation, they insisted that though it was a pity a Chinese victim was produced, the Japanese military policeman and the Korean assistant did not have any responsibility for the death. After all, this debate ended with the Japanese victory. Japan already almost completely occupied the inner administration, the local administration, and the social security of Joseon. And the Japanese could take well advantage of the Koreans. Though this case was not a complex one, the investigations on the case and the consequent diplomatic conflict between China and Japan expose the dynamic relation of Ch'ing and Japan around Korea and a picture of a Korean village society in the age of historical change in 1911.

참고문헌 (38)

  1. "淸季駐韓使館檔案", 中央硏究院 近代史硏究所 檔案館 所藏, ~
  2. "每日申報", ~
  3. "淸季中日韓關係史料", ~
  4. 구범진, "韓淸通商條約 일부 條文의 해석을 둘러싼 韓-淸의 외교 분쟁", 대구사학, 83, pp.193~232 (2006), 대구사학회
  5. 구선희, "韓國近代 對淸政策史 硏究" (1999), 혜안
  6. 권구훈, "일제 한국주차헌병대의 헌병보조원 연구(1908~1910)", 사학연구, 55-56 (1998)
  7. 권인용, "1884년 ‘최약국명안’(崔藥局命案)의 재구성", 아세아연구, 57(1), pp.73~108 (2014), 아세아문제연구원
  8. 권인용, "1884년 ‘崔藥局命案’의 解體와 再編 -田保橋潔의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심으로 -", 史叢(사총), (80), pp.285~320 (2013), 역사연구소[DOI]
  9. 김민철, "식민지통치와 경찰", 역사비평, (봄) (1994), 역사비평사
  10. 김익한, "일제식민지 시기의 통치체제 형성" (2002), 혜안
  11. 김혜정, "통감부 설치와 한국 식민지화" (2009),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2. 김희신, "駐朝鮮使館의 화교 실태조사와 관리 ― 청일전쟁 이전 漢城ㆍ仁川을 중심으로 ―", 명청사연구, (34), pp.205~236 (2010), 명청사학회[DOI]
  13. 김희신, "淸末(1882-1894년) 漢城 華商組織과 그 位相", 중국근현대사연구, (46), pp.53~80 (2010), 중국근현대사학회
  14. 김희신, "근대 한중관계의 변화와 외교당안의 생성 ― 「淸季駐韓使館保存檔」을 중심으로 ―", 중국근현대사연구, (50), pp.35~73 (2011), 중국근현대사학회
  15. 김희신, "‘漢城 開設行棧 조항 개정’ 교섭과 중국의 대응", 동양사학연구, (113), pp.199~244 (2010), 동양사학회
  16. 박은숙, "청선(淸船)의 한강 출입 문제와 무역장정의 법리 논쟁: 1884년 2월 이명진(李名振) 선박 구류사건을 중심으로", 아세아연구, 57(1), pp.37~72 (2014), 아세아문제연구원
  17. 박정현, "중국 근대 공문서에 나타난 韓中關係 -「淸季駐韓使館檔案」解題" (2013), 한국학술정보
  18. 박정현, "청일전쟁 이후 한중 간 분쟁의 유형과 한국인의 중국인에 대한 인식", 중국근현대사연구, (59), pp.23~44 (2013), 중국근현대사학회
  19. 박정현, "1882~1894년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 해결방식을 통해 본 한중관계", 중국근현대사연구, (45), pp.1~20 (2010), 중국근현대사학회
  20. 박정현, "19세기 말 仁川과 漢城의 중국인 居留地 운영체제", 동양사학연구, (113), pp.171~198 (2010), 동양사학회
  21. 박정현, "19세기 末(1882-1894년) 朝鮮 華商의 조직과 상업 활동", 중국사연구, (66), pp.51~86 (2010), 중국사학회
  22. 서민교,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 (200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3. 손승희, "채무소송으로 본 華商의 商慣行(1906~1910) - 移住空間 漢城을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논총, (36), pp.187~237 (2012), 동북아역사재단[DOI]
  24. 송규진, "근대시기 한중관계의 변화과정", 역사와 담론, (68), pp.197~228 (2013), 호서사학회
  25. 송규진, "「청계주한사관당안」(「淸季駐韓使館檔案」) ‘소송안건’ 계량화를 통한 근대 한중 간 소송사건에 대한 재해석", 아세아연구, 57(1), pp.7~36 (2014), 아세아문제연구원
  26. 윤해동, "'통감부설치기' 지방제도의 개정과 지방지배정책", 한국문화, 20 (1997)
  27. 이승희, "伊藤博文와 韓國駐箚憲兵隊", 일본역사연구, (32), pp.49~71 (2010), 일본사학회
  28. 이영옥, "한중 민간소송연구, 1906-1910―導之案姚貴春案劉金有案 등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 중국근현대사연구, (35), pp.1~30 (2007), 중국근현대사학회
  29. 이영옥, "조청관계에 대한 편의적 이해 사례", 동북아역사논총, (35), pp.163~196 (2012), 동북아역사재단
  30. 이은자, "한국 개항기(1876~1910) 중국의 治外法權 적용 논리와 한국의 대응 ―韓中間 조약 체결 과정을 중심으로", 동양사학연구, (92), pp.187~227 (2005), 동양사학회
  31. 이은자, "韓淸通商條約 시기(1900~1905) 중국의 在韓 치외법권 연구", 명청사연구, (26), pp.89~121 (2006), 명청사학회
  32. 이은자, "‘訴訟’ 안건을 통해 본 청일전쟁 이후(1895~1899) 韓中關係 연구", 중국근현대사연구, (38), pp.27~62 (2008), 중국근현대사학회
  33. 이은자, "大韓帝國時期 韓中間 民事訴訟의 實例 ―‘彭姜案’(1898~1900)을 中心으로―", 동양사학연구, (100), pp.177~215 (2007), 동양사학회
  34. 이은자, "淸日戰爭 이전과 이후 在韓 韓中間 ‘訴訟’ 안건 비교 분석", 아시아문화연구, 17, pp.45~65 (2009), 아시아문화연구소[DOI]
  35. 이은자, "韓ㆍ中 近代 外交의 실험, 1895-1905年", 중국근현대사연구, (58), pp.1~25 (2013), 중국근현대사학회
  36. 이학로, "華商 死亡 事件과 그 訴訟을 통해 본 韓·中關係: 袁世凱의 朝鮮 在任 時期를 中心으로", 아세아연구, 57(1), pp.109~143 (2014), 아세아문제연구원
  37. 임종국,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2" (1989), 일월서각
  38. 朝鮮憲兵隊司令部, "朝鮮憲兵隊歷史(1-6)" (2000), 不二出版社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