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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를 통해 본 백제 한성기 영산강 유역 진출과 포구

Paekche's Yeongsangang River Basin Domination and Port through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in the Hansŏng(漢城)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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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를 통해 4~5세기 백제와 영산강유역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4세 기 후반 백제는 영산강 유역을 포함한 마한 전역을 세력권에 편입하고 대외교섭권을 장악하였다. 세력권은 대 외 ‘교섭’을 통제하였으나 대외 ‘교류’와 내정에서 지방의 독자성이 인정되는 단계이다. 백제는 4세기 후반에 왜까지 연결되는 장거리의 서남해안 연안항로를 네트워크 형태로 운용하였다. 5세기 중후반 백제는 영산강 유역에 ‘점’ 단위로 지배력을 강화하여 간접지배 단계로 넘어갔으며,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를 유지하였다. 백제는 5세기 중반 이후 나주 반남, 영암 시종 등에 ‘점’ 단위로 위세품을 사여하였고, 영산강 상류에 새로운 지배 거점을 만들었다. 영산강 유역은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의 주요 경유지로서, 가야, 왜와 활발한 대외교류를 진행하여 ‘교류’의 영역에서 일시적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경유지였던 영산강 유역에는 다수의 포구가 존재하였다. 나주 다 시면 일대의 회진포는 해선의 항행이 가능한 포구였으며, 영암 시종면은 영산강 하류의 넓은 만에 연결되는 좋은 포구였으나, 나주 반남면은 상대적으로 입지조건이 불리하였다. 그 외에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은 해창만 상포리 포구와 연계되었고, 함평 세력은 함평천-영산강 혹은 함평만 포구를 통해 연안항로와 연계되었으며, 영광, 고창 일대에서는 법성포를 통해 연안항로와 연결되었을 것이다. 백제는 한성기에 영산강 유역을 포함한 마한 전역을 세력권에 편입하여 ‘교섭’을 통제한 뒤, ‘점’ 단위로 위세품을 사여하며 간접지배 단계로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였다. 이를 통해 백제는 왜까지 연결되는 서남해안 연 안항로를 네트워크 형태로 운영하였다. 영산강 유역 세력은 중요한 경유지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가야나 왜와 활발한 교류를 지속하였다. 백제가 영산강 유역 포구를 묶어서 활용한 서남해안 연안항로 네트워크는 한반도 중부 이남의 여러 정치체가 달성할 수 없었던 성과이자 다원적인 질서였다.

Abstract

In this article, the port of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in the 4th and 5th centuries were reviewed in Paekche's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In the late 4th century, Paekche incorporated the entire Mahan area, including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into its sphere of influence and took control of foreign negotiations. In the late 4th century, Paekche operated a long-distance south-west coastal route that connected to Wa(Japan) in the form of a network. In the mid-to-late 5th century, Paekche strengthened its dominance i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in a "point" unit and moved to the indirect control stage, and maintained a network of the south-west coastal route. There were a number of ports i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which played an important role as a stopover in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forces functioned as an important stopover and continued active exchanges with Kaya and Wa. The south-west coastal route network, which Paekche used by tying up ports i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was an achievement that various political groups in the south of the central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could not achieve and a pluralistic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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