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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부장품을 통해 본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의 대외교류

Foreign Exchange of the Mahan Power Group at the Yeongsan River Basin through Grave Goods of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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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유역이 위치한 서남해 연안지역은 백제-가야-왜로 이어지는 교류과정에서 중요한 길목에 해당하며 관련된 많은 유적과 유물이 확인된다. 이러한 물질자료를 통해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의 대외교류를 그 대상국별로 시기적으로 검토했고, 그 배경과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의 대외교류는 3시기로 나누어진다. 1기 중에서 5세기 이전 영산강유역에서는 백제토기와 가야토기가 일부 확인되는데 대체로 철소재류를 매개로 지역 간 문물교류의 결과로 파악된다. 5세기 이후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은 백제와 가야토기를 수용하여 영산강유역양식 토기를 만들었고, 왜와의 관계(고분·부장품)는 밀접해졌다. 2기는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이 백제양식 토기를 수용하거나 금동관과 금동식리와 같은 위세품을 받아들이면서 재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또한 가야와의 관계는 단순한 문물 교류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관계로 확대했으며, 왜와의 관계는 고분과 관련된 공인집단이 관여하는 등의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다. 3기는 영산강유역의 마한세력이 백제에 완전히 병합되어 사비기 백제양식 토기의 출현과 관등제가 확립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은 왜와의 교류에서 주도적인 입장을 보인다.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의 대외교류를 시기별로 변화양상의 배경과 역할을 살펴보았다. 5세기대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은 백제와 왜의 교류 중에 중개자로서 정치적·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면서 성장한 것으로 파악되며, 왜계고분도 나타난다. 6세기대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은 백제와 왜 왕권 사이에서 실리를 취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고, 그것이 북부큐슈계 횡혈식석실과 장고분으로 표출되었다. 당시 백제-영산강유역 마한세력(복암리집단)-소가야(송학동집단)-중북부큐슈세력(이와이)-왜왕권(계체왕)으로 이어지는 교류에서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이 차지하는 정치적, 경제적 비중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영산강유역 마한세력이 적극적으로 왜계 묘제와 관련된 매장의례를 도입하는 것은 지역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는 중요한 사회적 전략에 해당한다

Abstract

Yeongsan River(榮山江), located in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 is an important spot for the process of exchange connecting Baekje(百濟), Gaya(伽倻) and Wae(倭). At this site, many remains and relics can be found. Through these materials, this study investigated foreign exchange of Mahan(馬韓) power group according to time and corresponding countries, and examined its background and their roles. Foreign exchange of the Mahan power group around Yeongsan River is divided into three periods. In the first period, before the 5th century, some Baekje and Gaya potteries were found around Yeongsan River and most of them are considered to be the results of cultural interchanges of steel materials. After the 5th century, the Mahan power group made Yeongsan-style potteries by accepting Baekje and Gaya potteries and it led to closer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Wae. In the second period, Mahan geographically expanded its influence by taking Baeke style potteries and prestige goods such as gilt bronze crowns and gilt bronze shoes. In addition, it politically expanded its relationship with Gaya, getting away from the simple cultural exchanges and also broadened its relationship with Wae by accepting tomb-related workers. In the third period, Mahan was completely absorbed into Baekje and made Sabi period into Baekje style potteries and established office-rank system. In this condition, Mahan took a leadership position in exchange with Wae. In the process of Mahan’s foreign exchange, the 5th century’s Mahan developed by exchanging Baekje for political and economical benefits with Wae. These Baekje were found in Wae style tombs. In the 6th century, Mahan actively sought ways to take benefits between Baekje and Wae Royal authorities and this was expressed in the North Kyusu style stone-chamber tombs and keyhole shaped tombs. At that time, Mahan was considered to play a big role both in politics and economy, in the exchange connecting Baekje-Mahan in Yeongsan River(Bokamri Group)-Sogaya(Songhakdong group)-North Central Kyusu(Iwai)-Wae Royal Authority(Gyeche King). Therefore, Mahan’s introduction of burial ritual related to Wae style memorial service is considered to be an important strategy to seek the change on local group’s cultural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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