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표관(瓢舘) 연구
A study on Pyogwan in In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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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한국의 지역 극장 표관의 시대적 정황과 그 활동 내역을 검토하고, 인천에서 표관이 차지하는 지역성과 그 의의를 조사하고자 구상되었다. 인천에 표관이 건립된 시점은 1910년대로, 일제 강점기 표관은 조선의 지역을 대표하는 극장 중 하나였다. 인천 표관은 역시 일본인 사주 극장이었던 가무기좌와 마찬가지로 비단 일본인의 극장으로만 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설립 운영되며 조선인과 영욕의 시간을 함께 보낸 극장으로 잔존했다. 비록 일본인 극장이었지만 인천 지역민의 민족적 공존과 다양한 문화적 생태를 주도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표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료 수집과 근거 확보가 필요했는데, 주로 신문과 잡지 그리고 관련 논문들의 선행 연구 성과에서 이러한 자료와 근거를 확보하였다. 본 연구가 한국연예사의 한 대목을 복원하는 데에 사소하지만 필요한 토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Abstract
This paper review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and activity patterns of Pyogwan(theater), and is the research to analyze the regional historical significance and historical value of Pyogwan in Incheon. Pyogwan in Incheon is a theater that existed since the 1910s. Incheon Pyogwan was the birthplace of both convergence and multi-cultural theater like Gamugijwa(another local theater of Inchon). Based on the activity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Incheon pyogwan, this study analyzes the historical movie entertainment value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area of Pyog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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